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확 죽여벌라" 끝없는 갈굼…지옥보다 끔찍했던 청년의 첫 직장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센터 (사진=연합뉴스)

"피고인은 직장 상사로서 피해자를 여러 차례 폭행하고 폭언, 협박을 반복했다. 피해자는 거의 매일 시달렸고,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 내지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약 1년 전 불과 25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전 모 씨가 겪은 '직장 내 괴롭힘'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사건기록을 살핀 판사가 직장 내 괴롭힘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칭할 정도로 전 씨는 매일 직장 상사 A(41) 씨로부터의 폭언과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전 씨는 2021년 8월 입사 이후 사망 전날까지 직장에서 받은 고통을 한 번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유서 한 장 없이 떠난 동생의 죽음에 의문을 가진 형이 '혹시 남겨놓은 음성메시지라도 있을까' 열어본 휴대전화에는 동생 전 씨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녹음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 내가 너보고 알아서 하라 그랬지? 그런데 왜 ○○○아. 너는 그 차 나갈 때까지 고통받을 줄 알아. 이 ○○○아."

지난해 3월 21일 오전 10시 4분에 이뤄진 전 씨와 직장 상사 A 씨 간 첫 통화녹음 내용에 형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전 씨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던 통화녹음은 모두 86건으로 말 첫머리부터 끝머리까지 온통 욕설로 가득한 A 씨의 폭언은 5월 19일까지 하루도 빠짐없다시피 이어졌습니다.

"닭대가리 같은 ○○ 진짜 확 죽여벌라. 내일 아침부터 함 맞아보자. 이 거지 같은 ○○아"(3월 29일), "죄송하면 다야 이 ○○○아"(3월 30일), "맨날 맞고 시작할래 아침부터?"(4월 4일), "개념이 없어도 정도껏 없어야지"(4월 10일),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열두 대야"(4월 19일)

폭언은 그칠 줄을 몰랐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인격 모독적인 발언들 속에서는 폭행 정황도 드러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A 씨의 입에는 전 씨 부모까지 오르내렸습니다.

사망 닷새 전 "너 지금 내가 ○○ 열 받는 거 지금 겨우겨우 꾹꾹 참고 있는데 진짜 눈 돌아가면 다, 니네 애미애비고 다 쫓아가 죽일 거야. 내일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 이 ○○○아, 알았어?"에 이어 나흘 전 "너 전화 한 번만 더 하면 죽일 거야"라는 욕설을 들은 전 씨는 홀연히 가족들 곁을 떠났습니다.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가족들한테도 얘길 못한 거겠죠. 죽여버리겠다고 하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가족들에 따르면 전 씨가 다녔던 강원 속초시 한 자동차 부품회사는 직원이 5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전 씨에게는 첫 직장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약 20년 경력의 A 씨는 첫 직장 상사였습니다.

입사 시기를 고려하면 괴롭힘이 더 있었으리라 추정했지만, 통화녹음과 폐쇄회로(CC)TV 일부를 토대로 밝혀낼 수 있었던 범행은 주먹으로 머리를 때린 행위 4회, 협박 행위 16회, 정보통신망법 위반 행위 86회뿐이었습니다.

손가락질, 삿대질, 비난, 비판, 금기, 경고, 훈계 (사진=픽사베이)

이는 공소장에 담긴 범죄사실일 뿐, 전 씨와 A 씨 간 2개월 동안 이뤄진 통화 700여 건 중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통화 역시 모욕적인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전 씨 가족을 도운 노무사는 "현실에서는 무슨 일을 더 당했는지 몰라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법정에서 전 씨와 유족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고, 만성 신장병으로 혈액투석 치료를 받아온 사정 등을 들어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1단독 장태영 판사는 "피고인은 직장 상사로서 피해자를 전담해 업무를 가르치는 역할 등을 수행하면서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폭행을 가하고, 약 2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폭언, 협박을 반복했다"고 질타했습니다.

이어 "피해자는 거의 매일 피고인의 극심한 폭언과 압박에 시달렸다. 피고인의 각 범행 직후 불과 며칠 만에 피해자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피고인의 각 범행이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에 상당한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장 판사는 "도저히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 결국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 두려움, 스트레스는 가늠조차 어렵다"며 "이 사건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훈계와 지도 명목'이라는 A 씨 측 주장을 두고는 "피고인이 직장 내에서 피해자에게 가한 폭행과 폭언은 피해자의 기본적 인권과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이었고,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CCTV 영상에 나타난 피해자의 모습은 피고인 앞에서 매우 위축되어 고개마저 들지 못했다"고 일축했습니다.

장 판사는 "사랑하는 막내아들이자 동생인 피해자를 잃은 유족들 역시 커다란 슬픔과 비통함에 빠져 있다. 피고인에 대해 그 책임과 비난 가능성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했습니다.

A 씨만 항소한 이 사건은 오는 30일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립니다.

전 씨의 형은 "징역 2년 6개월은 솔직히 적죠. 저희 입장에서 합당한 죗값은 무기징역이죠. 사람이 죽었는데.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해자는 다신 사회에 나오면 안 돼요. 더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직장 내 괴롭힘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생기고, 처벌도 강화되길 바랄 뿐입니다"라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유족은 노무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산업재해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담당 노무사는 "자해 행위는 산재로 인정되지 않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나 과로로 말미암은 극단적 선택의 경우 인정되는 사례가 있어 다퉈볼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유족은 또 A 씨와 회사 대표를 상대로 최근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