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의사를 때리는 일이 또 있었습니다. 어제(31일) 새벽 경북 구미에 위치한 한 병원 응급실에서 취객이 둔기를 휘둘러 의사가 머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술에 취한 대학생이 철로 만들어진 응급실 비품으로 의사의 뒤통수를 갑자기 내리친 것입니다. 머리를 맞은 전공의는 두피 동맥 파열과 뇌진탕으로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 "왜 비웃어?" 의사가 웃는다고 폭행…의료방해 행위 1년 만에 55% 급증
의사들이 욕설과 폭행에 시달리는 것은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이 아닙니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응급 의료기관에서 신고된 폭행·폭언·협박·성추행 등의 의료방해 행위는 893건으로 2016년 578건보다 약 5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올해 6월까지는 582건의 신고가 있었는데, 이 중 68%인 398건은 환자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저지른 일로 파악됐습니다.
의료진이 웃었다는 이유로 주먹을 휘두른 A 씨처럼 환자들이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입니다. '내가 원하는 주사를 놔주지 않아서', '내가 먼저 왔는데 먼저 진료해주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폭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응급실은 선착순이 아니라 응급 환자 분류체계에 따라 진료 순서가 정해지기 때문에 난동을 부리거나 화를 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 호주에서는 의사 때리면 최고 14년 형…의료진 폭행,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다?
의료진에 대한 폭행이 끊이지 않는 대표적인 이유로 전문가들은 가벼운 처벌을 꼽습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협박이나 폭행으로 응급의료 행위를 방해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2015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강화된 것이지만,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사례가 많아 폭력 사건이 근절되지 않는다고 의료계는 주장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징역형을 받는 사례가 많지 않고 벌금형으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법 개정 직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사를 폭행한 사람이 벌금 300만 원에 약식기소로 마무리된 일도 있었습니다. 정성균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SBS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가해자와 합의하는 경우 처벌이 많이 약해진다"며 "여러 가지 정서상 환자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약했던 게 사실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의사협회 측은 의료기관에 벌어지는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정부의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에서도 의료기관에서 의료인을 폭행했을 때 보다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법률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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