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이었던 원충연 씨가 이명박 정권이 언론인을 비롯해 민간인에 대해 사찰한 기록을 108페이지 분량의 수첩에 적은 것이었다.
21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몸통은 응답하라 - 방송 장악과 언론인 사찰의 실체'편을 통해 국정농단 사태 1주년을 맞아 사상초유의 국정농단을 가능하게 했던 권력의 방송 장악 과정을 파헤쳤다.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과 3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촛불 시위가 거세지자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한 달 후, 공직자 비위행위를 감찰하는 목적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들의 감찰 대상 1순위는 공직자가 아닌 방송사였다.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그때 조사 대상으로는 문화·언론계, 기자들 무분별하게 무차별적으로 사찰을 했다. 미행은 당연한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방송사 PD, 기자를 포함한 문화 예술 언론인들의 가족 관계, 아파트 대출금 기록까지 지극히 사적인 정보들이 빼곡히 적힌 기록은 놀랍게도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소속 공무원들에 의해 전방위로 진행된 민간인 사찰의 결과였다.
이영호 당시 고용노사비서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망감을 갖고 국가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모든 문제는 바로 내가 몸통이다. 나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시길 바란다"며 민간인 사찰사건의 몸통을 자처했다. 이명박 정권의 사찰의 대상이기도 했던 검찰은 결국 비선라인 3명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했다.
검찰 조사 당시 장진수 주무관은 씨는 비밀을 폭로하지 않은 대가로 청와대 행정관으로부터 대기업 임원직과 억대 연봉을 제안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2년 뒤인 2012년 양심고백을 했으나, 그때는 방송사들이 자신의 주장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언론이 그릇된 길로 접어든 후였기 때문이었다.
방송 장악은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해 박근혜 정권에서 완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민간인 사찰 사건을 다뤘던 언론인들은 해고되거나 비제작 부서로 부당 전보를 당했다. 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의한 언론인 사찰 내용은 국정원이 작성한 방송 관련 블랙리스트로 이어지고, 리스트에 오른 언론인과 문화예술인들은 차례차례 방송 현장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다.
MBC와 KBS의 주요 인사에는 이명박근혜의 사람으로 채워진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가 이어졌고 공영방송은 정권 대변 방송으로 변질됐다.
민명방송인 SBS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윤창현 SBS 노조위원장은 "SBS는 공영방송과 다른 형태로 정교하게 통제돼 왔다. SBS 보도를 내부에서 통제해왔던 인사들이 직접 청와대로 건너가 버리는 형태로 진화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최금락, 하금열, 이남기 등 지난 9년간 SBS 임원 6명이 청와대로 옮겨갔다. 이날 제작진은 자사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이어가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정권에 의한 방송장악의 전모를 추적하던 제작진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문건을 입수했다. 더불어 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 자료에는 언론 장악, 여론 통제, 종편 보도 등에 대한 세세한 방향과 지시 사항이 적혀있었다. 이 모든 내용은 "VIP에게 빨리 보고할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적힌 것으로 봤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도 회의 내용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날 '그것이 알고 싶다'는 지난 9년간 대한민국이 어떻게 시대를 역행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 기간 대한민국 언론 자유도는 30위에서 70위로 추락했다. 감시견이 되어야 할 언론과 기자는 기레기로 전락했다.
시청자들은 분노했다. 더불어 적폐청산에 대한 강력한 지지와 몸통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더불어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로 이번 방송을 준비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SBS funE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