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파산은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인데, 첫 번째는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흔히 '리먼 사태'라고 부르는 과거 금융위기가 소환됐는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부실로 금융회사가 쓰러진 건 맞지만 원인은 아예 다릅니다.
뭐가 다른 건데?
하지만,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사과정을 거치지 않은 '무증빙 대출'이 판을 쳤고 '소득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문구의 대출 상품이 팔리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서 끝났다면 다행이었겠지만, 이런 대출을 묶어 만든 증권 상품이 시장에 팔렸고, 이 증권 상품이 손실을 보면 무조건 보상해 주겠다는 보험회사(AIG)까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낄 대로 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자 '파티'는 끝났고,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리먼 사태가 촉발됐습니다. '부실' 자산이 전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은행이 무너진 이유는 완전히 다릅니다. 이 은행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기업과 그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사에게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습니다. 문제는 예금으로 받은 돈을 투자할 만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찾은 게 미국 국채였습니다. 이자는 1% 정도지만 미국이 망하지 않는 한 손해를 불 일이 없기 때문에 안심하고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미국 중앙은행이 전례 없는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실리콘밸리 은행은 장기 국채를 주로 사들였습니다. 초안전 자산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예전 가격을 회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은 기다려 주질 않았습니다. 은행 입장에선 서울 강남에 10억짜리 아파트를 샀다가 2~3억쯤 떨어져도 곧 오르겠지 하고 기다리려 했는데, 갑작스레 낮은 가격에 집을 처분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 겁니다.
은행이 불안하다는 소식이 들리자 고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돌려달라고 하고 은행은 손해를 보며 국채를 내던지다 보니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