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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잇] '머슴살이' 농장, 한국 정부가 소개해줬다?

최정규 |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 겸 활동가

'머슴'이라는 단어는 농가에 고용되어 농사뿐만 아니라 주인집 허드렛일까지 도맡아 담당하는 노동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1894년 갑오경장으로 노비제도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노비가 머슴으로 편입되었고, 농업 생산의 변동으로 농민층이 양극화되면서 머슴의 숫자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1930년에는 50만 명이 넘는 머슴이 있었고, 1950년에는 남한만 해도 27만 명이 이상의 머슴이 존재했고, 1960년 머슴의 수가 24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970년 공업의 발전으로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농촌에서 머슴살이를 하려는 사람은 보기 드물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머슴처럼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적장애인들이다. 60명이 넘는 지적장애인들이 전남의 작은 섬에 갇혀 수십 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않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일이 세상에 알려진 2014년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가해자들을 처벌한 형사 판결문을 보면, 염주들이 장애인을 다른 염주에게 보내 일을 시킨 후 그 대가로 수백만 원의 돈을 받아 챙긴 범죄까지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가해 염주들은 장애인들을 머슴처럼 부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이 신안군 염전에서만 일어난 건 아니다.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2017년 8월 31일 배포한 아래 지도를 보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런 장애인 노동력 착취가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후에도 서울 잠실야구장, 서울 노원구 소재 사찰 등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에서도 지적장애인을 머슴처럼 부린 일은 계속 발견되었다.

(출처=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홈페이지)

게다가 대한민국에서 머슴처럼 생활하고 있는 건 지적장애인만이 아니다. 지난주 경남 밀양에서 농장주에게 머슴처럼 이 집, 저 집 농장을 전전하며 혹사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7명이 시민단체에 의해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 경기도 안산에서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은 여러 지역 인권단체들과 연합으로 1박 2일 농업 노동자를 찾아가는 '인권버스'를 운영했는데, 그 과정에서 7명의 이주노동자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모두 한국 정부로부터 합법적인 체류 자격(비자)를 받았고, 한국 정부가 지정 알선한 농장주와 계약을 체결한 노동자였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계약한 농장주의 농장에서만이 아니라 동네 농민들이 필요할 때마다 이 집 저 집 농장을 전전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계약서에 적힌 휴식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채 머슴처럼 혹사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현행 외국인고용법상 엄연히 불법이며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지위를 악용한 강제노동이다.

작년 12월 20일, 캄보디아 출신 한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한 사건이 벌어진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현실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지적장애인 노동력 착취도 충격적이지만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건 머슴살이와 같은 착취를 당하고 있는 사업장을 알선한 곳이 민간 직업소개소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 즉 고용노동부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사용자가 이주노동자의 취약한 지위를 악용하여 머슴처럼 마음껏 부릴 수 있도록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길 자유마저 박탈하였다. 이주노동자가 인권 침해를 당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운'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침해 사실이 폭로되고 있다.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인권버스가 지난주 1박 2일 출동하여 구출해낸 건 7명에 불과하지만, 현재 그런 불안한 지위에 놓여 있는 이주노동자는 20만 명에 이른다.

한국은 2000년 UN에서 채택된 인신매매의정서를 2015년 193개국 중 170번째로 비준했다. 인신매매의정서에는 '취약한 지위를 악용한 강제노동이나 강제고용을 위한 모집'을 인신매매라고 정의한다. UN 자유권위원회는 2015년 대한민국 정부가 인신매매를 필사적으로 근절해야 함을 요청하면서 "고용허가제 하의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 변경을 자유롭게 하도록 허락할 것"을 콕 집어 주문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이 주문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국회 또한 선거권, 이른바 표가 없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안타까워할 뿐 현실을 바꿔낼 수 있는 제도 개선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세계 3대 통신사인 AP통신이 지난 4일 보도한 이후 전 세계 언론이 이주노동자의 머슴살이에 대해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건 '대한민국 코로나19 방역'만이 아니다. 지적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현대판 머슴살이'로 불리는 인신매매를 대한민국 정부가 근절시킬 수 있는지를 전 세계가 두 눈 부릅뜬 채 지켜보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국제사회에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때다.
 

'이주노동자는 마을 머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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