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주말부터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 논란과 관련한 연속 보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원으로 헝가리 유학을 가고 점차 일본인으로 변해갔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친일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며 음악가로서의 재능은 인정해야 한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국내에는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를 토대로 지휘자 안익태에 대한 평가를 확인해봤습니다.
정준호 기자입니다.
<기자>
1941년 10월 10일.
대형 일장기와 헝가리 국기가 걸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비거도 공연장에서 직접 작곡한 일본 궁중 음악 에텐라쿠를 지휘하는 사람,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입니다.
공연 3주 뒤 헝가리의 한 음악 잡지는 그의 지휘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안익태의 지휘 능력은 시작 단계로 큰 작품은 할 수 없다"고 전제한 뒤 "안익태의 지휘 능력이 떨어져 음악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헝가리의 한 현지 평론가는 최근 음악적으로 보면 "1943년 페렌치크의 지휘를 일본 교향곡 초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보국/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 지휘자로서 아주 뛰어난 역량으로 (선택)됐다기보다는 (일본 국적인 안익태가 지휘자로서) 음악회 성격에 맞았던 거죠.]
안익태에 대한 헝가리 음악계의 최근 평가도 비슷합니다.
유력 평론가 덜로시 안나는 2015년 한 음악 잡지에서 "안익태는 지휘자로서 스킬이 부족했던 일본인 또는 한국인"이라며 "정치적인 이익을 추구했던 사람"이라고 적었습니다.
1941년 일본 교향곡 공연 직후 안익태에 대한 인터뷰 기사에서도 "몇 년 전 한국 사람이라며 자신의 음악을 소개했는데 요즘은 일본 사람이라고 말해 조금 당황스럽다"고 돼 있습니다.
반면 다른 연구자인 허영한 교수는 안익태가 독일에서 변방의 지휘자 취급을 받은 건 맞지만 헝가리와 프랑스에서의 평가는 나쁘지 않았으며 특히 스페인에서는 큰 호응을 얻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영상취재 : 배문산, 영상편집 : 김종태, CG : 홍성용, VJ : 김준호, 화면제공 : 유튜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