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에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정상을 모으는 일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머릿속에 그렸던 상상이었다. 한국전쟁의 당사국 정상들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 모여 전쟁의 종식을 공식 선언할 수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을 추동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도 이런 구상을 실현해보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못했고, 그 이후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꿈을 꿨지만 현실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어려운 역사적인 일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이뤄져 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로부터 불과 이틀이 되지 않는 시간에 말이다. 이렇게도 간단한 일을 우리는 그동안 너무 어렵게 생각해왔던 것일까.
● 북미 교착 타개로 이어질까
하지만, 북미 정상의 이번 역사적 만남이 북미 교착의 타개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하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를 주목시키는 만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실무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것 외에 북미 교착의 핵심 쟁점들이 해소됐다는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최근 들어 '유연한 접근'을 언급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비핵화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미국과, '영변 비핵화' 이외의 것은 언급하지 않고 있는 북한과의 간극은 여전하다. '미국이 움직이지 않는 한 북한이 먼저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 또한 달라졌다는 근거는 없다.
물론, 북미 정상이 실무협상 재개에 합의한 만큼, 실무진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가능성은 있다. 실무협상에 소극적이었던 북한이 협상 대표를 정해 회담장에 나오는 것만 해도 지금까지 보다는 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단 만나서 얘기를 하다 보면 여러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남긴 강렬한 이미지가 비핵화 협상의 긍정적 진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하지만 판단은 아직 일러 보인다. 7월 중 있게 될 것으로 보이는 실무협상에서 북미 양측이 실질적으로 어떤 입장을 보일지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미지'와 '실질'을 구분하는 냉정함을 유지해야 한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북미협상의 길을 트럼프 대통령이 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트럼프의 돌발성을 비판하는 시각도 많지만, 이번 판문점 회동에서만큼은 트럼프의 창의성을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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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