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소까지는 7km. 충분하겠다 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충전소를 목전에 두고 언덕을 오르던 차가 갑자기 뒤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계기판은 아직 9km 더 갈 수 있다고 알려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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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조사 "전기차, 내연기관차와 달라…운전 능숙했어야"
제조사는 전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질 때 출력이 낮아지도록 설정하는 건 전기차의 특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운전자가 사고 때 당황하지 않고 브레이크를 밟았거나 능숙한 운전으로 뒤따르던 차를 옆으로 피했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얘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아마 비슷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한 뒤 '전기차는 이럴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구나.' 알게 된 운전자들도 있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A 씨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운전 경력 20년이었지만 능숙하지는 못했고, 전기차는 처음이었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차가 뒤로 밀리면, 당황해서 머릿속이 하얘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배터리가 그렇게 낮아질 때까지 둔 적이 거의 없어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고 A 씨는 설명했습니다.
다른 전기차들도 같은 조건일까 싶었습니다. 여기저기 물었습니다. 전기차는 원래 그렇다고 말하기 전에 이런 운전자들을 배려하는 장치를 마련해둔 제조사들도 있었습니다.
BMW 전기차 계기판은 보이는 그대로 믿어도 문제가 안 생깁니다. 전체 배터리 전력에서 15% 정도를 따로 떼어 두고 운전자에게는 표시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85% 정도의 전력을 전체 전력으로 계산해 그중 얼마가 남았는지를 운전자에게 알립니다.
때문에 계기판에 배터리가 0% 남았다고 표시되더라도 실제로는 15% 정도의 전력이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배터리 0%가 되면 운전자는 차를 세우게 될 테지만, 그래도 얼마 간은 더 달릴 수 있다는 게 제조사 설명입니다. 배터리 잔량 표시를 그대로 믿고 달려도 갑자기 서는 일은 안 생기게 됩니다.
닛산과 르노 삼성 전기차는 배터리가 5% 아래로 내려가면 주행 가능 거리가 아예 표시되지 않습니다.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 명확하지 않으니, 차를 세우고 충전하게끔 유도합니다.
이런 제조사들은 전기차 특성을 잘 모르는 운전자도 불편을 겪지 않게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전기차 주행거리 표시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고 저전력 때 차가 가다 설 수 있다고 해도, 불필요한 오해와 불편을 없앨 방법이 없지는 않은 듯합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전기차가 우리나라에 보급되기 시작한 건 2010년부터입니다. 2015년 5천712대였던 자동차 등록 대수는 매해 2배씩 늘다가 지난해 5만 5천756대가 됐습니다.
비싼 전기차의 보급이 이렇게 가파르게 느는 데는 보조금 역할이 큽니다. 지자체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구입 시 1천만 원 이상 보조받을 수 있습니다. 값싼 유지비도 장점입니다. 배터리 충전 비용은 내연기관차 기름값의 20%도 안 된다는 것이 전기차 차주들의 공통된 경험담입니다. 전기차 차주들은 보조금이 줄어드는 추세라 지금이 살 '타이밍'인 데다 오래 탈수록 '가성비'를 챙길 수 있다고도 덧붙입니다.
전기차의 이런 장점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소비층은 넓어지고 있습니다. 차에 관심이 많고 차를 잘 알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도 내연기관차의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만 타던 차에서 누구나 사봄 직한 차로 확산되는 단계입니다.
A 씨의 사례를 다시 생각합니다. 전기차는 원래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갈 수 없는 차가 더 갈 수 있다고 잘못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A 씨 같은 사람도 사고를 내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더 먼저 듭니다.
정부는 올해도 4만 대 이상의 전기차를 보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전기차가 더 많이 보급되려면 A 씨 같은 사람들도 불편 없이 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할 겁니다. 헷갈리는 배터리 표시 특성에 대해 상세히 알리거나, 아예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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