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는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그저 흰 헝겊으로만 이뤄진 인형입니다. 이 인형극은 인형을 조종하는 퍼펫티어의 존재가 숨겨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지만, 전혀 이질감 없이 인형과 퍼펫티어가 일체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극의 진행에 따라 '인형 생활 보조금이 깎이면서' 퍼펫티어 한 명이 해고되고, 프레드는 이 때문에 다리를 못 쓰게 됩니다. 저는 공연을 보면서 프레드와 함께 웃고 함께 슬퍼했습니다. 이 작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인형이 살아서 진짜 울 수 있을 것 같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죠.
저는 수화를 모르지만, 수화통역사의 표정이나 몸짓만 봐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통역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재미있어서 자꾸 수화통역만 보게 되더라'고 했더니 '그러면 수화통역을 잘못한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실감 나게 공연 내용을 전달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화통역을 보느라 본 무대에서 진행되는 중요한 상황을 놓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공연 수화통역에 고려할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요즘 들어 콘서트나 연극에서 수화통역자를 두는 경우가 늘고는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 공연 수화통역은 특별한 '이벤트'에 속합니다. 날을 정해서 장애인 관객들을 초청한다든지, 장애인 복지 차원에서 따로 공연을 마련한다든지, 이런 식입니다. 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일찌감치 보편적인 문화 향유권에 관심을 갖고 일반 공연에도 자막과 함께 수화통역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해 래퍼 에미넴의 공연에서 속사포 같은 랩을 번역하는 수화통역사가 세계적인 화제가 된 바 있는데요, 영미권에서는 랩 전문 통역사가 따로 있을 정도로 공연 수화통역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하이징스 극단은 장애인 배우들을 '배려해서' 공연에 끼워주는 정도가 아니라, 장애인 배우들도 똑같이 직업 배우로 활동하는, '장애-비장애 통합 극단'입니다. '프레드'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 세 명이 지적장애나 자폐증이 있는 배우라고 들었지만, 공연을 보니 배우들에게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이징스 극단은 장애를 가진 배우들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주고, 이들의 연기를 연극이나 영화 등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공연에 온 청각 장애 관객들을 인터뷰한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질문을 하면 수화통역사 김홍남 씨가 이를 수화로 번역했고, 역시 수화로 한 관객의 대답을 김홍남 씨가 또다시 음성으로 통역하는 절차를 거쳤습니다. 이들은 자막이나 수화통역이 있는 공연이라면 꼭 찾아가서 보려고 하고 있답니다. 이번 공연은 특히 두 명의 수화통역사가 너무나 실감 나게 통역해 줘서 더 놀랍고 재미있었다고 했습니다.
수화로 통역된 '프레드' 공연은, 청각 장애가 있으면 공연을 즐길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누구나 공연을 즐길 수 있고,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줬습니다. 이런 '배리어 프리' 공연이 한국에서도 계속 늘어나면 좋겠습니다. 프레드는 장애인일 수도 있지만, 사회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에 갇혀 꿈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대변하는 캐릭터 같습니다. 저도 프레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프레드'는 공연이 끝났지만 <이음 해외공연 쇼케이스: 영국> 시리즈 중 '조건(On One Condition)'이 17일부터 19일까지 장애인 편의를 고려한 대학로 문화예술공간 이음센터에서 공연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 장애인문화예술원 홈페이지 www.i-eum.or.kr 참고.
(사진=영국문화원 제공, 영상=유튜브 'Eminem Central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