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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A'와 'The'도 모르는 한국 여성이 하버드 의대 교수로 사는 법 - ①

"김 선생이 쓴 논문을 보면 'a'와 'the'의 올바른 사용법을 모르는 것 같은데, 이를 개선하기 위한 계획이 있습니까?"

하버드 의대 류마티스 내과 주임교수으로부터 송곳 같은 질문이 들어왔다. 20대 중반에 시작한 미국 생활, 해리포터를 달달 외우며 노력했지만 영어를(실은 영어만) 모국어로 쓰고 있는 그들과 같을 수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108편의 국제 논문 중 40편을 제1 저자로 직접 썼지만, 명사 앞에 붙는 관사 a나 the는 정말로 난감했다. 게다가 주임교수의 질문에 애정이 섞여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미국에서 진행되는 인터뷰에는 대부분 면접자의 강점과 약점을 묻는 질문이 포함돼 있는데, 대개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묻는다.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해 강점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되고 반대로 약점이 없다며 자만하는 것도 금물이다. 강점과 약점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고, 특히 약점에 대해서는 극복 계획까지 포함해 명료하게 답하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주임 교수는 '김 선생'에게 약점을 알려주고 이를 해결할 계획을 말하라고 했으니, 사실상 정답을 유도하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김 선생은 '개인 영어 강사를 두고 꾸준히 연습하면서, 1년 후까지 완벽하게 사용법을 익히겠습니다.'라는 정도로 적당히 대답하면 될 일이었다.

"저의 제한된 시간을 'a'와 'the' 용법을 익히는데 사용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면 류마티스 치료 약의 안전성과 효과를 연구하는 게 낫겠습니까?"
하버드 의대 류마티스 내과 김서영 교수(가운데), 조동찬 SBS의학전문기자(왼쪽), 최성욱 정형외과 전문의(오른쪽)
붉은 노란색 단풍잎들이 양쪽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버드 의대 건물 앞마당에서 하버드 의대 내과 교수로 브리검 여성 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 류마티스 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김서영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하버드 의대 도서관과 보건대학원, 그리고 세계적인 의학 저널(NEJM,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의 사무실을 일일이 가리키며 기자에게 친절히 설명한다. 하버드 의대 교수 신분증이 있어야만 출입할 수 있는 의과대학 본관도 둘러 보게 해준다. 의대 건물 뒤편으로 이름만으로도 전율을 느끼게 하는 부속병원들이 펼쳐져 있다.

특이한 점은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에는 학교명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버드의대부속 어린이병원은 보스턴 어린이병원 (Boston Children's Hospital), 암센터는 다나 파버 암연구소 (Dana–Farber Cancer Institute)라는 이름뿐이다. 이름만 들어서는 하버드 의대 부속병원인지 헷갈릴 정도지만 직접 가서 보니 하버드 의대를 중심으로 롱우드 메디컬 지역(Longwood medical area)이라 불리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 안에 각각의 병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이 병원을 따라 암 병원을 지나자 번쩍번쩍 빛나는 건물 안으로 심장과 관련된 모든 시설이 응집된 샤피로(Shapiro)심장 센터가 나타났고, 바로 그 옆, 가장 새로운 건물에 김 교수가 진료하는 브리검 여성 병원이 자리했다. 개별 병원의 하드웨어를 구성하는 건물은 각기 다른 시기에 지어졌지만, 내부는 모두 새 건물인 것처럼 깨끗이 리모델링이 돼 있다. '언제 리모델링한 것이냐?'(실은 김 교수와 기자는 의대 동기 사이다. 모든 인터뷰는 반말로 진행됐다.)는 질문에 '리모델링은 항상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병원 등급 심사를 잘 받기 위해 수십억을 들여 리모델링을 한 후 10여 년간 그 상태로 머물고 있는 국내 한 대학병원이 떠올라 잠시 씁쓸했지만, 세계 최대 규모의 지원을 받는 하버드 대학병원과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실력 있는 학생이 공부도 가장 열심히 하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성공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한국에서 비남성, 비서울대 출신으로 받았던 편견보다는 크지 않았어."


김 교수는 2000년 한양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삼성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한 후 이민을 선택한 가족을 따라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 캐나다 전문의로 살아갈 계획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던 장벽이 나타났다. 몬트리올은 영어와 불어를 모두 모국어로 쓰는 동네였는데, 그곳의 의사들 역시 영어와 불어를 번갈아 쓰고 있었다. 영어와 불어가 고르게 섞인 곳에서 수련을 받는다는 건 자신에게 너무 혹독한 일이라고 판단해 곧바로 미국행을 선택했다.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고통이 따랐지만, 불어와 영어의 혼돈이 주는 고통보다는 덜 할 것이라며 그녀는 자신의 미국행 선택을 스스로 지지했다. 그렇다고 쥐가 출몰하는 허름한 아파트에 살며 허름한 차림의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면서 펜실베니아 대학( University of Pennsylvania) 병원 내과 전임의로 연차를 밟아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혼자 사는 게 외롭고, 낯선 사람들이 무섭고, 세계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병원의 의사 일이 힘에 부쳤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녀를 먼저 위로했던 건 자신이었다.

'괜찮아. 너무 힘들면 도로 한국 가면 되잖아.'

삶에는 넘을 수 있는 장벽과 없는 장벽이 공존한다. 넘을 수 없는 장벽 앞에서 '포기하자'는 말은 지혜의 언어가 되고, 넘을 수 있는 장벽 앞에서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은 벽을 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는 말을 절대로 하지 말자'던 어느 인문학 교수의 인생철학과 겹치는 순간이었다. 자신을 가엾게 여길 줄 알아야 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쌀 수 있다고 했던가? 쉽지 않은 삶을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아끼지 않았던 위안은 어느새 그녀를 찾아오는 류마티스 환자에 대한 끊임없는 공감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류마티스 환자를 먼저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위로는 환자가 위안을 얻을 때까지 충분해야 한단다. 그녀가 한 환자에게 1시간 넘는 진료가 빈번한 비효율적인 의사로 찍힌(실은 사랑받는) 이유이다. 류마티스 의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류마티스병이 환자를 얼마나 오랫동안 아프게 했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에는 비장함까지 느껴진다. 비남성, 비서울대 그리고 동양인, 여성. 그녀는 편견의 병마를 겪을 때마다 상처받은 것보다 더 크게 자신을 위로했고, 그것이 회복력의 나무로 자라나 풍성한 힐링의 기운을 환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결국 그녀의 이타적인 삶은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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