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명계좌 69개 개설…왜?
행정안전부와 서울 강북의 모 새마을금고 전·현직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밝힌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곳의 이사장 B 씨가 차명계좌 69개를 만든 기간은 지난 2006년~2010년 사이입니다. 이사장을 선출하는 대의원과 금고 직원들의 명의로 개설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금고 고객 명의로도 일부 차명계좌가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객 중에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고 금고를 찾아와 항의하는 사태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B 씨가 그 많은 차명계좌를 만든 이유는 수원의 모 새마을금고 이사장 A 씨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1인 1계좌에 한해 3천만 원 한도 내에서 이자 소득에 사실상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3천만 원에 대한 1년 만기 이자가 30만 원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는 이 이자의 약 15%(약 4만 5천 원)가 세금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비과세 혜택을 받을 경우 약 1%(약 3천 원)의 세금만 떼이게 되는 거죠. 자신의 명의로 아무리 많은 계좌를 개설해도 1계좌에 한해서만 세금 우대가 있는 겁니다. B 씨가 69개 차명계좌를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B 씨의 69개 차명계좌엔 각각 1천만 원~3천만 원까지만 들어 있었는데 다 합쳐 2억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난 건 지난 2015년쯤이었습니다. B 씨는 행안부와 금융감독원 등이 벌인 합동 감사에서 차명계좌 69개를 개설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16년 B 씨는 최종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에 연루된 직원 10여 명에게도 징계 처분이 내려질 정도로 강북의 이 새마을금고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 '정직' 처분 이사장, 선거에 다시 나와 당선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B 씨는 비교적 중징계에 해당하는 정직 2개월을 받고도 불과 여섯 달 만에 이사장 선거에 다시 나와 당선됐습니다. 차명계좌를 69개나 개설한 이사장에게도 피선거권이 주어지는 새마을금고의 시스템은 분명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행안부 설명에 따르면 새마을금고법 상 임원 결격 사유가 있습니다. 정직을 받게 되면 당연 퇴직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조항이 2016년도에 신설됐습니다. 그전에는 없던 법이라 소급 적용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차명계좌 69개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울산의 한 새마을금고에서 현금 1억여 원의 강도 사건이 있었죠. 강북의 이 새마을금고에서는 2014년도에 비슷한 도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 경비 업체 직원이 금고 안의 현금 7천만 원을 훔쳐 달아났던 겁니다. 이 경비 업체는 다름 아닌 금고의 보안을 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B 씨는 차명계좌에 대해 "다 지나간 일이라 다시 꺼내기가 좀 그렇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 당시는 여러 가지로 모든 업무가 미숙해서 그런 잘못을 범한 것 같은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하더군요. 현금 도난 부분과 관련해서는 "돈을 원상회복하긴 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 행안부 "금고 내부 통제 바꾸겠다"
이 새마을금고의 차명계좌 개설 건 등을 제보한 2명의 전직 관계자, 이들의 지향점은 뚜렷합니다. '금고가 이사장의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선량한 직원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금고 중앙회에 자정 능력이 없으니 외부에서라도 강제로 수술대 위에 올려놔야 한다'라는 것이죠.
'개고기 갑질', '보복성 인사 조치', '차명계좌 23개 개설', '차명계좌 69개 개설'…. 새마을금고 이사장들이 벌인 네 가지 사례에서조차 금고 중앙회가 투명하게 감사를 진행한 건 제 취재 결과로는 없습니다. 그간 중앙회 감독을 제대로 못 한 행안부에 분명 1차 책임이 있습니다. 지난해 말 외과의를 자처하며 법 개정에 뛰어든 건, 늦은 감은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