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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논란을 안고 취임한 민유숙 대법관…논란 키운 대법원

[취재파일] 논란을 안고 취임한 민유숙 대법관…논란 키운 대법원
“그래서 보석 허가를 해 줬다는 거야, 말았다는 거야?”

지난 주말 지인과 나눈 대화의 일부입니다. 문장 속 생략된 주어는 어제(3일) 취임한 민유숙 대법관입니다. 민유숙 대법관은 민법에 조예가 깊고, 젠더법연구회 회장도 지내는 등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법조계는 민 대법관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반영한 의미 있는 판결로 보수가 압도하고 있는 현재의 대법원에 균열을 내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대를 안고 취임한 민 대법관이지만, 뭔가 개운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앞서 언급한 보석 허가와 관련된 의혹입니다. 의혹의 골자는 민유숙 대법관이 1994년 형사단독 판사 시절, 병가 중이던 A 판사의 재판을 대직하면서 부정한 청탁을 받고 보석 허가를 내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민 대법관은 지난달 20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그런 기억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 '거짓말 탐지기'까지 언급된 '보석 의혹'

국회 청문위원의 계속된 의혹 제기와 민유숙 대법관(당시 후보자)의 “기억이 없다”는 답변이 반복되자 인사청문회에서는 “거짓말 탐지기(polygraph test)를 한번 해 볼 의향이 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공방 속에 의혹은 ‘의혹이 제기된 특정 사건은 보석이 신청되지 않았다→A 판사가 병가 중인 기간 동안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K 변호사가 변호한 사건에 대해 보석 허가가 있었다→민유숙 대법관이 보석을 허가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로 시시각각 변했습니다. 그리고 ‘의혹’은 ‘논란’이 됐습니다.
민유숙 대법관 후보자(사진=연합뉴스)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10여 일, 그리고 어제 민 대법관이 취임까지 했지만 보석 허가와 관련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보석 허가를 해 줬느냐, 말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공식 답변은 여전히 “모른다”입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94년 당시에 민유숙 대법관과 함께 대직했던 사람을 찾아서 물어보기도 그렇고, 설사 해당 사건을 민유숙 대법관이 보석을 허가했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민유숙 대법관에 대해 논란이 있더라도 그대로 두겠다, 문제가 없는 게 논란이 됐다는 겁니다.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하는 것은 대법관이 단지 높은 관직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국민의 입장에서 대법관은 인생이 달린 문제의 ‘마지막 재판’을 하는 사람입니다. 1,2심 판결에 납득하지 못해 ‘법원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법리와 사회에 가장 해박할 것’이라는 기대로 개인의 인생이 걸린 재판의 마지막 판단을 맡길 사람이 대법관이기에 인사청문회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법원 관계자의 말대로라면, 국회 인사청문회에선 쓸데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한 셈입니다. 마지막 재판을 맡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를 확인하고 검증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낭비했다는 거죠. 그런데 민유숙 대법관의 보석 허가 유무를 떠나 인사청문회 하루 종일 논란을 키워 시간을 허비하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의혹을 제기한 주광덕 의원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큰 책임은 대법원, 정확히는 법원행정처에 있습니다.

● 전에 걸러질 수 있었던 보석 논란…법원행정처는 왜 논란을 키웠나?

인사청문회 전 '부정한 청탁에 의한 보석 허가' 제보를 받은 주광덕 의원 측은 병가 중이었던 A 판사가 복직한 이후 1달 동안 선고한 판결문을 법원행정처에 요구했습니다. A판사(현재 변호사)는 병가에서 복귀한 이후 보석 허가가 잘못됐다며 보석을 취소했다는데, 판결문을 통해 이를 확인하고 사건을 특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행정처는 “94년도는 ‘전산화’가 이뤄지기 전”이라며 판결문 제공을 거부했습니다. 판결문이 없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청문회 당일 법원행정처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관련 판결문을 찾아냈기 때문이죠.

법원행정처가 A판사가 과거 내린 판결문 제공을 거부하면서 인사청문회 내내 장님 코끼리 만지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한된 인사청문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습니다. 판결문을 보지 못해 구체적 사건을 특정할 수 없었던 주광덕 의원 측은 제보받은 사건의 개요만으로 사건을 특정해 가려 했습니다. 24년 전의 일이라 개요도 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스무고개가 시작됐습니다. 주광덕 의원이 이러저러한 사건일 것이라고 말하면, 사전에 판결문 제공을 거부했던 법원행정처는 그제야 그와 비슷한 사건의 판결문과 보석기록부를 확인하는 지난한 과정이 인사청문회 당일에서야 이뤄졌습니다.

‘A 판사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자’, ‘광주지법에 가서 관련 기록을 직접 살펴보자’는 의견은 여당 의원들의 반대 속에 무산됐습니다. 결국 스무고개 끝에 내려진 결론은 ‘부정한 청탁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K 변호사가 변호한 사건에 보석 허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보석 허가를 민유숙 대법관이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운치 않은 결론이었죠.

이런 개운치 않은 결론, 인사청문회가 스무고개로 변질된 단초는 법원행정처가 제공했습니다. 애초에 법원행정처가 A 판사가 내린 판결문을 제공했더라면, 의혹이 명확해 질 수 있었거나 사전에 해소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법원행정처는 그렇게 해지 않았습니다. 왜 일까요. 단지 94년도의 판결문이 전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건 적절한 답변이 아닙니다. 과거의 판결문은 찾는 건 번거로울 뿐 불가능한 게 아닙니다. 번거로움을 이유로 판결문 제공을 거부했다면, 이는 대법관 인사청문회의 중요성과 무게를 너무 가볍게 본 겁니다. 마지막 재판을 맡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한 겁니다.

그런데 단지 번거로움을 이유로 법원행정처가 판결문 제공을 거부했다고 보기엔 석연찮은 점이 있습니다. 앞서 등장한 A판사(현재 변호사)는 민유숙 대법관이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대법원의 지인을 통해 논란이 된 보석 관련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민 대법관(당시 후보자)에게 보석 허가와 관련된 문제가 있는데 사전에 점검했느냐는 취지였다고 A판사는 말합니다.

이것이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던 법원행정처에 전해졌다면, 그리고 그 시점이 주 의원 측에서 판결문 제출을 거부하기 전이었다면, 행정처가 다른 목적으로 판결문 제출 거부했다고 추정할 수도 있습니다. 보석 의혹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애초에 덮어버리려고 했다고 말이죠.

번거로움 때문이었냐, 은폐하기 위해서였냐. 확실치는 않습니다. 이유는 법원행정처만이 알고 있을 겁니다. 다만, 어떤 이유든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이유가 후자라면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부적절하거나 심각한 법원행정처의 대처 끝에 민유숙 대법관은 논란을 안고 취임했습니다.

인사청문회 전날에는 민주당 중진 의원이 A판사와 주광덕 의원에서 보석 의혹을 덮고 가 달라고 전화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개인적 논란 뿐 아니라 정치적 논란까지 더해진 채 말이죠.
대법원
● 신뢰를 상실한 사법부…신뢰 회복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2015년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법부의 신뢰수준은 회원국 42개국 중 39위입니다. 콜롬비아와 칠레, 우크라이나만 우리나라보다 밑에 있을 뿐입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판결에 대한 불신, 나아가 법관에 대한 불신입니다. 사회적 중요성과 주목도가 높은 대법관에 대한 불신은 사법 불신을 가속화시킬 겁니다.

민유숙 대법관 인사청문회와 그 전후 과정을 살펴본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법원행정처가 왜 논란을 키웠는지 모르겠다. 행정처는 후보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를 빨리 밝혀 국민께 양해를 구하거나 애초에 문제가 없다면 이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후보자가 의혹을 클리어 할 수 있도록 도왔어야 한다”며, “민 대법관이 여러 논란을 안고 취임했는데, 앞으로 내릴 판결이 정치적인 오해를 받으면서 사법 불신을 키우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라고 말이죠.

김명수 대법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힘줘서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과 ‘국민의 눈높이’를 강조했습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법관에 대한 신뢰,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은 결과 뿐 아니라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겁니다.

민유숙 대법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에게 얼마나 신뢰를 얻었을까요. 민 대법관의 인사청문회 준비를 도운 법원행정처는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그 과정을 진행했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 향상에 도움이 됐을까요.

“이래저래 개운치 않은데, 이렇게 되면 취임하고 나서 내리는 판결도 좀 찝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서두에 등장했던 지인은 어제 취임한 민유숙 대법관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민유숙 대법관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본 ‘국민의 눈높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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