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지 않기 위해
제 몸에 소금을 뿌리고
움직이는 바다를 보아라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
제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고
출렁이는 바다를 보아라
(하략)
<바다·3, 이도윤 시(詩)>
시인의 말처럼 잠들어 죽지 않기 위해서건, 길을 막아선 섬을 향한 파도의 울분이건, 섬은 파도의 공격에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끊임없이 죽어라 덤벼드는 파도에 섬인들 달리 무슨 방법이 있을 것인가. 그렇게 섬은 깎이고 패여 절벽이 되고, 바위 구릉이 되고, 종내는 모래사장이 되기도 한다.
수기 해안둘레길이 그랬다.
거친 바위를 타고 넘자, 수기해변이 보인다.
아이들은 썰물의 갯벌에서 무언가를 찾고, 잡느라 호미로 열심히 갯벌을 두드리고, 또 파헤치느라 여념이 없다. 소년은 무엇을 잡았을까? 워낙 진지한 모습이라 감히 물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 길은 수기해안 둘레길로 이어진다
길은 산등성이를 따라 숲으로 이어진다. 숲에서 길은 너그러워지고, 여행자는 보물찾기라도 하는 양 한 발 한 발 내딛는 순간순간 다른 모양, 다른 느낌으로 다가서는 길에 취한다. 게다가 은근히 코끝을 간질이는 숲의 향기는 심신을 깨우고, 지친 육신을 일으켜 세운다.
묵묵히 앞서가는 친구를 불러 세운다. 표정이 좋다.
문득, '사람들이 맛있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싸우고 투쟁해온 게 아니라, 그냥 즐겨왔기 때문에, 그 '즐김'의 결과로서 우리가 다양한 커피를 맛보게 된 것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일을, 여유를, 오늘을 즐기는 것이 사람의 위대한 성취를 이루는 길'이라는 <행운의 절반, '친구', 스탠 톨러 作>의 구절이 떠오른다.
커피의 블렌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러 종류의 커피가 서로 섞기고 어울리면서 더 나은, 더 풍요로운 맛이 나오지 않던가. 누군가와의 어울림이야말로 살아가는 일의 근간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더 열고, 더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길과 잇닿아 있는 밭 하나. 노련한 농부의 밭갈이가 일품이다.
밭 위로 펼쳐진 이랑과 고랑이 만들어내는 질서정연한 선(線)들이 차라리 추상화, 그 자체다. 예술작품의 수준이다. 이랑의 봉우리를 일정한 폭과 높이로 유지하면서도 전체의 구도가 흔들림이 없다. 또 고랑은 어떤가. 반듯하면서도 일정한 깊이의 고랑을 이루는 선이 곧으면서도 유려하다. 작물을 재배할 밭이라기보다는 전위예술이 펼쳐진 화랑처럼 보인다.
새삼 창조자이면서 종합예술인인 농부의 재능과 수고스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이 밭에서 자라게 될 농작물은 아마도 더 건강한 먹거리가 될 것이라 짐작해 본다.
마을을 지나자, 울타리를 자처한 모란꽃이 화사하다.
● 길은 모도로 이어진다.
시도와 모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옆으로 작은 섬인 양 소나무 두 그루가 의연하다. 소나무 옆에는 어디론가 달려가는 형상의 조각상이 즐겁다.
모도는 면적이 1평방k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섬 주변이 모두 좋은 어장이라고 한다. 특히 시도와의 사이에 있는 갯골은 '웬돌끼미'라고 하는데, 곳배(*새우잡이를 하는 데에 쓰는 돛이 없는 바닷배) 어장으로 새우, 우럭, 농어가 많이 잡히던 곳이란다.
길은 모도의 '해송숲길'로 이어진다.
어쩌다 오늘처럼 도보 여행을 하노라면 저질 체력의 한계와 직면하면서 스스로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생겨먹을 걸 어쩌란 말인가. 그래도 계획대로 걷는다면 이래저래 족히 20km은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말한다. 누구나 걸을 수 있다고. 어느 순간까지의 고통만 넘기게 되면 발은 저절로 움직인다고. 도보여행자의 구루이자 끝판왕인 그의 이야기이니만큼 신뢰할 수 있는 말이다.
그가 누구인가.
그는 유수의 신문 기자 생활을 끝낸 다음 해, 예순이 넘은 나이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 장장 2,300km에 이르는 길을 걸은 후 걷기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산티아고 길의 마지막 지점에 이르러서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완주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꾼다.
'온 몸을 던져 걸은' 그가 '걷기엔 특별한 비결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걷기 위해서 태어났고, 누구나 걸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 조금 걸었다고 투정대는 모습은 그야말로 어리광인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는 고독이 필요하고, 홀로 걸을 때 신체균형을 되찾고 사고도 건전해진다고 강조한다. 그에게 걷기는 자신을 되찾는 재충전의 시간이면서, 인간에 맞는 속도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걷기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이고, 에너지 충전 시간이라는 말이다.
앞으로도 베르나르 올리비에에 대해 말하는 기회는 많을 것이다. 걷는 한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길은 '검은돌이' 해변으로 가라 한다.
모도에서의 길은 산을 따라 이어지는 해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틈엔가 바닷가에서 서성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중간중간 많은 이정표가 검은돌이 해변, 시든물 해변, 뾰족바위 해변 등으로 자꾸만 유혹하기 때문이다. 이정표를 따라 내려간다는 것은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당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유혹에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 아닌 다짐을 하게도 된다. 서산에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고, 아직도 목적지는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이름이 특이한 박주기는 모도의 끝 뿌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모양이 박쥐같이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모도의 땅끝에서 인고의 소나무를 만나다.
모도제방의 또 다른 이름도 해당화길이다. 삼형제섬의 제방 길의 이름은 다들 해당화길인 까닭은 긴 제방의 둑 가장자리에 해당화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공통적인 해당화길의 특징 중 하나는 해당화들이 잡초들과 지난한 자리다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갯벌 위로는 낮 동안의 조업에 지친 배가 몸을 누인 채 쉬고 있고, 덩달아 새벽부터 이어진 하지 무렵의 긴 여정을 마감하려는 뜨겁던 태양마저 쉴 곳을 찾아 서산을 넘어가고 있다.
짙은 푸른빛이 드리워진 바다 저편으로 발갛게 노을이 익어간다. 머지않아 노을이 지는 가운데, 바다는 먹빛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휴식의 시간이다.
걷는다는 것은 성취다. 그리고 걷는다는 것은 치유이기도 하다. 스스로 해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자기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말한다.
"그렇게, 끝에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살아있고 싶다."고….
<대중교통>
공항철도 운서역에서 20번 버스 또는 영등포역에서 301-1번 버스, 인천역에서 307번 버스, 김포공항에서 리무진 버스 607번 버스를 이용하여 삼목선착장 하차.
<자가용>
삼목선착장 주차장(주차비 무료)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