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짧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룬 나라이다. 가난하지만 평등한 사회에서 상승이동의 열망에 가득 찬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결과, 한 세대 만에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접어들 때까지만 해도 치열한 경쟁은 성장의 원동력이었고 국민의 행복감도 높아졌다. 굶주림에서 해방되었고, 생활은 편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만 달러를 넘어선 현재는 전혀 다르다. 성장이 자동으로 더 많은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박탈감이 더 문제가 된다. 그 이유는 교육이나 환경처럼 남들과 대비해 희소성을 갖는 위치재(positional goods)가 매우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풍요의 역설’, ‘성장의 역설’이 넘쳐난다. 예를 들면, 대학진학률은 70~80%이지만 ‘명문대학’ 졸업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전국 주택보급률이 110%를 넘지만, 서울에서 내 집 장만하는 일은 젊은이들에게 거의 불가능한 꿈이다. 제한된 지위재를 둘러싼 과잉경쟁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장과 풍요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행복감은 더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과잉경쟁의 문제를 선진국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의 질이 높다는 점이다. 사회의 질이란 GDP 같은 경제지표로는 잡아낼 수 없는 사회발전의 척도로서, 전체 사회의 발전이 개인의 역량개발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 대한민국 사회의 질은 OECD 30국중 28위
두 번째로, 사회적 응집성이 높고 시민 정치참여도가 높은 덴마크나 스웨덴에서는 공동의 문제에 대한 시민적 해결 의지가 높고, 또 문제를 풀어나갈 제도권 정치도 잘 작동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적정한 수준의 실력경쟁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한국은 투명성이 낮고 각종 기관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높다. 그래서 수치화된 객관적 평가에 매달리는 과도한 간판경쟁의 폐단이 나타난다.
세 번째로, 사회의 질이 높은 사회에서는 조화로운 공생발전이 가능하다. 불평등이 적고 구성원 간의 신뢰도 높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대적 불평등이 심각하고 불신도 높은 한국은 약육강식의 승자 독점에 가깝다.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 위험회피 경쟁 대신 창의성 경쟁을, 과도한 간판경쟁보다 적정 수준의 실력경쟁을, 약육강식의 승자독점보다는 평화로운 공생발전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 위 글은 2004년부터 매년 열린 SBS ‘미래한국리포트’를 정리한 ‘더 좋은 사회 더 나은 미래’ (SBS 미래부/이창재 엮음, 한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