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은 급성간암. 8개월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치고 스트레스로 매일 술을 마시다가 돌연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 전 수석의 어머니는 아들의 책장에서 비망록을 발견했습니다. 고인이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기록한 160쪽 분량의 비망록엔 그의 청와대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습니다.
비망록엔 김 전 실장이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과 단체, 인사 등을 압박하도록 지시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에 대한 세무조사 강행,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상영에 대한 대처,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관련한 조처,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한 검찰 기소, 대통령 풍자 전단을 살포한 팝아티스트 이하씨에 대한 처리방안 등, 굵직한 사건들에 청와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들이 담겨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기춘 전 실장이 '세월호 시신 인양을 포기할 것'을 지시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의 이런 답에는 일종의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특검수사를 염두에 둔 김 전 실장이, 비망록의 증거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데 주력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비망록의 증거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려 한다는 걸까요? 비망록이 사실로 인정되면 김 전 실장을 국가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하는 데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이 비망록이 재판에서 ‘증거력’을 인정받느냐 아니냐에 있는 겁니다.
어떤 자료가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된다는 것은 먼저 이 자료를 강압이나 다른 의도를 갖고 쓴 것이 아니라 사실대로 작성된 것이라는 점이 당사자의 법정 진술이나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입증돼야 하고(증거능력), 그 내용이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증명력).
이런 경우는 당사자의 법정 증언이 없더라도 그 비망록의 상태, 내용, 주변 사람들의 증언 등을 갖고도 이 비망록이 특별히 왜곡이나 조작됐다고 볼만한 이유가 없다고 판사가 인정하면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법률 용어로는 ‘특별히 신빙성을 부여할 수 있는 상태’, 즉 ‘특신상태’라고 합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증언 과정에서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이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신빙성을 깎아내렸는데, 그건 나중에 자신이 기소됐을 경우 비망록이 증거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포석인 셈입니다.
물론 비망록 하나만 갖고 김 전 실장을 형사처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검이 앞으로 비망록에 나타난 김 전 실장의 여러 혐의를 입증할 근거들을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획, 구성 : 김도균, 정윤교 / 디자인 : 정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