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상하이 문화광장으로 탄생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2005년 공사를 시작해 2011년 9월 ‘Ultimate Broadway’라는 제목의 뮤지컬 갈라 공연으로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 1,949석의 새 극장은 ‘문화광장’이라는 예전의 명칭을 살려 ‘상하이 문화광장’으로 이름 지어졌다. 올드 상하이 시절의 위락 타운에서 공산당 집회와 문화행사의 장소로, 이후 증권거래소와 꽃시장으로 이용되다가 지금의 뮤지컬 극장까지. 90년 가까운 이 곳의 변천사가 그대로 근현대 중국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얘기하면 무리일까.
파오고우창 시절의 상하이는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서양 열강들이 각각 넓은 조계지를 차지하고 지배하고 있었다. 상하이는 졍치적으로는 자주권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흥청대고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번성했던 중국 최초의 ‘모던 시티’였다. 상하이 사람들은 이 시기를 ‘올드 상하이’로 부르며 추억한다. 개 경주장의 번성은 이 시기 상하이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개 경주는 서양식 경마를 중국화한 오락이었다. 전성기 때는 1,500마리의 그레이 하운드를 경주견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1937년 이 곳의 입장료는 금 100그램에 상당하는 가격이었고, 1938년도 수입이 360만위앤에 이르렀다 한다. 프랑스인들이 장사를 잘 해 상하이 시민들의 주머니를 턴 셈이기도 하다.
중국이 공산국가로 출범한 이후, 이 곳이 대규모 집회와 문화 행사의 장소로 이용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반혁명 분자를 비판하는 대중 집회가 종종 열렸다고 한다. 이후 증권 거래소와 꽃 시장은 개방정책 이후 자본주의화가 급격히 진행된 중국의 모습을 반영한다. 이 곳이 ‘상하이 문화광장’으로 다시 탄생한 것은 급속한 경제 발전 이후 문화 발전에도 신경 쓰기 시작한 중국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예전에는 상업적 서양 문화라 해서 배척했을 법한 뮤지컬을 주된 장르로 삼은 것도 상징적이다.
중국의 뮤지컬 시장은 아직 발전 초기 단계지만 경제적 성장과 함께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다. 한국의 뮤지컬 시장은 빠른 속도로 팽창하다가 최근 몇 년 들어 주춤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한국 뮤지컬 계는 거대한 중국 시장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중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뮤지컬 극장으로 꼽히는 상하이 문화광장이 어떻게 운영돼 왔는지를 살펴보면 중국 뮤지컬 시장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을 듯했다. 리처드 페이에게 개관 이후 어떤 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우리는 뮤지컬을 위주로, 공연 시장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게 목표입니다. 고전음악이나 발레, 고전 연극 같은 것은 딴 극장에서도 다 하는 것들이니 우리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우리는 당대 작품들을 주로 공연해요. 관객층 연령도 아마 다른 극장과 비교해 가장 젊을 겁니다.”
개관 공연이었던 뮤지컬 갈라(여러 뮤지컬의 주요 장면 노래들만 발췌해 보여주는 형식) ’Ultimate Broadway’는 ‘미스 사이공’의 오리지널 캐스트로 유명한 리아 살롱가 등 해외 뮤지컬 스타들과 중국 밴드, 영국 제작 스태프들이 함께 참여해 만들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 맘마 미아, 시카고, 라이온 킹 등의 주요 장면이 공연되었다. 이 뮤지컬 갈라 공연이 큰 인기를 끌자 개관 이후 3년 연속 시리즈로 선보였는데, 모두 49회 공연되었다.
뮤지컬 하이라이트 공연으로 상하이 관객들의 관심을 끈 후에는 전막 뮤지컬 공연 ‘노트르담 드 파리’를 무대에 올렸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던 프랑스 뮤지컬이다. 상하이 문화광장에서는 2011년 12월 3주간 영문판 공연을 선보였는데, 이 공연의 프로듀서는 한국인이었다. 현재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배성혁 씨다.
“개관 이후 2년간은 극장 인력과 시설을 정비하는 기간이었죠. 전반적인 시설은 훌륭했지만, 처음엔 조명 무대 장치 운용에 문제가 많았거든요. 경험 있는 인력도 부족했고. 그러다가 2013년 겨울에 개막한 ‘오페라의 유령’ 공연이 터닝포인트가 됐어요. 63회 장기 공연으로 흥행도 성공했고요. 개막 3년째에 극장이 흑자를 내기 시작한 것도 ‘오페라의 유령’ 영향이 큽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사실 2004년초에도 상하이 대극원에서 공연된 적이 있다. (참고로 상하이에서 처음 공연된 뮤지컬은 2002년 선보인 ‘레미제라블’이다.) ‘오페라의 유령’은 한국에서는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해 당시로서는 최장기간인 7개월 동안 성황리에 공연되었다. 상하이 공연은 외국 프로덕션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지만, 한국 공연은 라이선스 공연, 즉 공연권을 사들여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을 기용해 제작한 것으로, 한국 뮤지컬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상하이에서도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시장 발전의 중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상하이 문화광장은 총경리와 부총경리 등 소수의 경영진만 상하이 정부 소속의 공무원이고, 다른 직원들은 모두 일반 기업의 직원과 다를 바 없다. 리차드는 이전에 상하이 대극원, 방송국 등에서 클래식 음악과 예술 교육 관련 업무를 하다가 상하이 문화광장 개관 6개월 전에 합류했다. 그는 상하이 문화광장이 정부 예산 지원 없이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좋은 공연을 잘 선택하고, 우리 공연장의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표도 많이 팔아야 하고요. 우리는 다른 공연장은 못 하는 일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죠. 우리 공연장은 계속 중국 뮤지컬 발전을 선도하고, 중국 관객들에게 다양한 공연을 접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 공연장의 프로그래밍에 대해 칭찬도 많이 듣고 있지만, 하나하나 굉장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니 쉽지는 않아요. 반드시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예술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고르려고 합니다.”
상하이 문화광장에서 공연된 뮤지컬들은 앞서 언급한 ‘오페라의 유령’ ‘노트르담 드 파리’ 외에도 ‘엘리자벳’, ‘슈렉’, ‘로미오와 줄리엣’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이 있다. 올 겨울에는 ‘모차르트’가 공연될 예정이다. 대부분 외국 프로덕션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었지만, 올해 공연된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중국인 스태프와 배우를 기용해 상하이 문화광장이 직접 제작했다.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극장 자체 인력들만 가지고 제작했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지만 좋은 경험을 쌓는 기회가 되었다. 올해는 제작 준비 기간이 짧았고 관객의 반응이 어떨지 확신하지 못해 5회 단기 공연에 그쳤지만, 관객의 반응을 보고 가능성을 확인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은 내년 프로그래밍에 포함시켰고, 대극장용으로 만든 세트를 중극장용으로 개조해 다른 극장에서도 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 창작 뮤지컬 지원도 중요한 역할입니다. 매년 중국 창작 뮤지컬 쇼케이스를 개최하면서 해마다 참가작과 공연 횟수를 늘려가고 있어요. 창작자들에게는 공연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우리는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한다는 의미가 있죠. 이 행사는 정부 문화기금을 신청해 지원 받고 있습니다.”
이밖에 ‘뮤지컬 논단’이라는 행사를 6년째 매년 5월에 개최하고 있다. 국내외 뮤지컬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교류하는 포럼 같은 행사다. (‘뮤지컬 논단’ 사진의 맨 왼쪽 인물이 리처드 페이다.) 상하이 문화광장은 뮤지컬 갈라 공연으로 문을 열었고, 이후 유명 뮤지컬 외국 프로덕션을 들여와 공연하다가, 이제는 중국 배우들과 스태프들을 기용해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직접 제작하는 단계에까지 왔다. 한편으로는 중국 창작 뮤지컬을 지원하고 소개하는 무대를 마련하고 있다. 뮤지컬 시장의 발전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가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