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기자가 만난 '탈레반' 오카다…정권교체 가능성은?

[월드리포트] 기자가 만난 '탈레반' 오카다…정권교체 가능성은?
지난달 27일 공식 출범한, 일본 제1야당 민진당이 어제(28일)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단을 당사로 불렀습니다. 오카다 가쓰야 민진당 초대 대표와의 간담회 자리였습니다. 여러 현안을 물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도 컸지만, 무엇보다 "일본 야당에 과연 집권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오카다 대표를 통해 가늠해보고 싶었습니다.

오카다 대표의 별명 중 하나가 '탈레반'입니다. 원리원칙주의자로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입니다. 외모에서부터 강직한 인상을 물씬 풍기죠. 취미는 '개구리 모형 수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구리'가 일본말로 '카에루(カエル)'인데, 바꾸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에루(變의 일본식 한자+える)'와 발음이 같습니다.

때문에 과거 민주당과 오카다 대표에게 비판적인 정치 평론가들은 오카다 대표가 "민주당을 사회당처럼 바꾸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린 적도 있습니다.

오카다 대표는 일본을 대표하는 유통업체인 '이온' 집안의 차남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인 셈이죠. 하지만 '도련님' 스타일은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공무원이 꿈이었고, 1976년 통산산업성 경제관료로 공적인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탈레반' 오카다와 아베 총리, 정반대 성향의 정치인
정치가로서의 능력이나 성품은 높은 평가를 받지만, 대중 정치인으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아베 총리와 많이 비교됩니다. 아베 총리가 지적 능력은 그다지 높지 않은(?), 전형적인 도련님 출신이지만 대중 정치인으로서는 탁월한 친화력을 발휘하는 것에 비해, 오카다 대표는 정반대 성향입니다.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안타깝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일본은 '당수토론'이라고 해서, 총리와 야당 대표가 1대1 국회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들유들 자기 주장을 펴는 아베 총리와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오카다 대표의 토론 배틀은 두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곤 합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오카다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일본 정치가로서 매우 죄송스럽고 부끄럽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2010년 당시 민주당 정부 시절에는, 일본 외무장관으로서 '한일 강제병합 100년 담화'에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아베 정권에 비해 한일관계에 합리적 태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지난해 한국 방문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만난 오카다 당시 민주당 대표
이런 배경 때문인지, 간담회 시작부터 '위안부 한일 합의'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때마침, 아베 총리 측근이자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 하기우다 관방 부장관이 "소녀상 철거가 한일 합의의 전제조건, 한일 간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라고 발언한 직후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오카다 대표는 '(외교적) 정답'을 고수했습니다. "한일 합의 내용에 관해 언급하지 않겠다"라며, 외무장관 출신다운 '외교적 수사'를 반복했습니다. 아베 총리에게 군 위안부 관련 '직접 사죄'를 자신도 촉구한 적이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소녀상 문제에 관해서는 끝내 언급을 피했습니다.

극우 하기우다 발언에 대한 일본의 합리적 정치세력의 '따끔한 반박'을 기대했던 한국 특파원들은 다소 맥이 빠졌습니다. 한국 특파원들의 기사가 즉각 일본 언론에도 소개되는 상황에서, 일본 우파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빌미를 아예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신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 관계 회복에 대한 강한 희망을 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국민 감정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지금의 한일관계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아시아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견인해 나갈 수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외무성이 홈페이지 한국 항목에서 '기본 가치를 공유한다'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약간 결이 다르지만 한일 국민감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연결되는, '일본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대한 질문이 묶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다음달 일본에서 열리는 G7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길에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특히 4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 피폭 희생자들이 '잊혀진 존재'로 취급받는 상황에서, 일본이 전쟁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하려 한다는 비판적인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오카다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에 간다고 해서 국가로서 일본의 책임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원폭 피해자들은 국가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라고 답변했습니다. 가해자나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고, '핵 없는 세상'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차원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카다 민진당 대표 간담회 모습, 왼쪽은 쓰지모토 기요미 중의원
위안부 관련 질의응답은 이렇게 '(외교적·정치적) 모법답안' 수준에서 겉돌았습니다.

질문은 자연스럽게 또 다른 핵심 현안 '(혐한시위 중심인) 헤이트스피치 규제법안'으로 넘어갔습니다. 일본 국회에서 현재 법안 처리(일본은 '성립'이라고 부릅니다)를 위한 여야 협의가 한창입니다. 명확한 처벌규정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간담회에 배석했던 쓰지모토 기요미 중의원이 주로 답변했습니다. 안보법제 반대 국회 포위시위에도 적극 참가하는, 민진당의 간판 여성 의원입니다. 쓰지모토 의원은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이 한계라는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현재 국회 의석 상황을 감안하면 헤이트스피치가 위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선에서라도 법안을 성립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집단괴롭힘이 더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뒤이어 헌법과 안보법제, 한국과 일본의 언론자유도 추락, 미국 대선에서의 트럼프 열풍에 대한 논평 등도 이어졌습니다. 모든 이슈에서 합리적이고 막힘없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아쉬웠습니다. 1시간 동안의 간담회를 농담 한마디 없이 진지하게만 끌고 나갔습니다. 뭐랄까요. 서두에서도 말씀드렸던 '탈레반 오카다'의 의미지를 확인·강화하는 자리였다고나 할까요…

보수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 일본에서, 더구나 7월 참의원 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민감한 이슈를 피해가고 싶어하는 오카다 대표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거대 여당, 자민당을 상대로 균열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력' 또는 '승부사 기질'은 그다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여름 일본 선거에서 민진당의 목표는 '개헌저지선 확보(자민-공명 연립여당의 2/3 저지)'라는 오카다 대표의 말은 '딱 그만큼만의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