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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당신이 '소록도'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이유

[취재파일] 당신이 '소록도'에 꼭 한번 가봐야 하는 이유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겠습니다.

2016년 새해를 이틀 앞두고, 취재를 위해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으로 향하면서 ‘환자들과 손을 잡아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록도는 한센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그 병은 감염이 될 수 있는 병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록도에 이틀 동안 머물며 보고 듣고 느낀 그 곳의 실상은 제 생각이 얼마나 한심한 생각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줬습니다.

● 한센병, 감염병이지만 이젠 거의 걸리지 않아

1박2일 간의 취재 후기를 전하기 전에, 소록도를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 소록도는 전남 고흥군 땅 끝에 위치한 섬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양이 아기 사슴과 비슷하단 뜻에서 ‘작은 사슴섬’(소록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

소록도는 1916년부터 한센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는 환자들이 정착해 왔습니다. 한 때 ‘문둥병’, ‘나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한센병은, 만성감염성 질환으로 피부와 말초신경에 병변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지금은 감염이 거의 되지 않는, ‘과거의 병’입니다. 혹 걸리더라도 약을 먹거나 간단한 치료만 받으면 완쾌됩니다.

쉽게 말해, 이곳의 환자들과 손을 잡고 피부를 맞대도 감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제 고백이 왜 “부끄러웠는지” 이제 아시겠죠?

소록도병원이 관리하고 있는 환자는 약 550명인데 이중 피부도말검사에서 세균지사가 양성으로 나타나는, 즉 지금도 한센병을 앓고 있는 ‘한센병 환자’는 9명에 불과합니다. 대다수는 과거에 한센병을 앓았지만 이미 완치된 ‘한센병력자’입니다. 완치가 됐는데도 소록도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입니다.

우선 10명 중 8명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들이라 한센병은 완치 됐지만 후유증에 따른 재활치료나 노인성 질환에 대한 지속 치료가 필요해서고, 그 보다 더 큰 이유는 한센병 환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했던 수십 년의 세월 탓에 이젠 돌아갈 곳도, 반겨줄 이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소록도 한센병 병원
● “며느리는 내가 여기 있는 줄 몰라”…한센인 노인들의 눈물

소록도에는 병원과 7개 마을이 있습니다. 정부가 규정한 소록도병원 입원 요건을 충족할 경우 이곳에 들어올 수 있으며, 마을에 살면서 상태가 악화될 경우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시스템입니다. 대다수는 가족 없이 홀로 사는 환자들입니다. 가족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있어도 만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서입니다.

세 명의 아들을 둔 한 할머님은 며느리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본인이 한센병을 앓았고, 현재 소록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숨겼기 때문입니다. 이 할머님 뿐만 아닙니다.

한센병 후유증으로 손가락이 뭉개지거나, 아랫입술이 처지는 등 피부질환을 앓는 어르신들의 경우, 남들 눈을 피해 소록도에 홀로 사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일도 있다고 합니다.

●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한센인 곁 지켜온 또 다른 가족들

가족의 빈 자리는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채웁니다. 어르신들도 이들을 많이 의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오후 진료를 온 간호사를 기다렸다가 직접 삶은 고구마를 손으로 까서 건네주기도 하고, 병동을 회진하는 의료진이 평소보다 방문 시간이 늦으면 직접 찾아와 ‘오늘 000선생 출근 안했어?’ 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의료진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이곳에서 어르신들을 치료하는 방법은 의술이 아닌 대화라고. 어르신들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전했습니다.

매년 평균 4000명 가까이 찾아오는 소록도병원의 자원봉사자들은 환자들의 자식이자 손주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길게는 몇 년, 짧게는 며칠씩 환자들의 손과 발이 돼 식사와 목욕을 거들고, 노래와 춤 등 재롱을 보이기도 합니다.

취재를 하며 자원봉사를 온 군산여고 학생들을 만났는데, 어린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을 다해 환자들을 돕는 모습을 보며 33살이 되도록 이곳에 봉사를 하러 와야겠단 생각조차 못했던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소록도
● 소록도병원 100년…대한민국의 질곡 역사 그대로 담은 소록도

올 해는 소록도병원이 개원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소록도병원의 시작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1916년, 일제가 한센인들을 소록도에 강제 감금했고 그 때 세워진 ‘자혜의원’이 소록도병원의 전신입니다.

일본에 의해 한세인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기도, 유전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정관수술을 시키고 임신한 여성을 강제 낙태시키는 비인권적인 행태가 많았습니다.

잘못된 역사는 해방 후는 물론 1990년대까지 되풀이됐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아마 언젠가부터는 그 오해와 편견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살아왔을 겁니다. 지난 100년은 아픈 시간이었을지라도 앞으로는 희망이 더 많은 소록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록도를 제대로 알고, 보려는 마음이 그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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