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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믿고 골동품 기증했더니…22년 뒤 참담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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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독일에 광부로 나간 한 한국 남자. 작은 골동품 가게를 하던 그는 독일에 간호사로 온 한국 여자를 만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히틀러 밑에서 고위직으로 일했던 사람의 집을 경매로 낙찰 받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 지하실 소파와 양탄자 밑에서 금괴와 현금을 발견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 당시 가치로 30억 원에 달하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 '돈벼락'을 맞은 사나이는 남기석(81)  씨. 그는 일부 소유권을 인정받아 순식간에 독일의 부자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 재산을 골동품 수집에 투자합니다. 신성일, 김지미 등 유명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골동품 수집가 사이에서 '큰 손'으로 통할 정도였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일생이 담긴 우표도 히틀러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와 그가 썼던 책상과 장롱도 피카소의 판화도… 단 한 점의 골동품만 팔아도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는 그였습니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는 구멍 난 이불과 베개를 베고 가스비가 아까워 전기장판 하나를 틀면서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가 됐습니다. 매일 아침 교통 정리하는 일을 하면서 버는 월 20만 원이 유일한 수입입니다. 독일에서도 손꼽히던 부자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문제는 지난 1993년에 시작됐습니다. 그는 그가 갖고 있던 모든 골동품을 청주시 어린이회관에 '기증'했습니다. 그의 기증품은 골동품 400여 점과 우표 4000여 장. 좋은 집, 좋은 차, 매달 지급되는 300만 원의 봉급 등 
다른 단체에서 보낸 유혹들을 뿌리치고 그는 '골동품을 오래도록 잘 보존하여 후대에 남기겠다'는 당시 청주 시장의 말을 믿고 전 재산을 쾌척하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케네디 우표가 없어요."
   
하지만 20여년이 지난 현재,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기증 당시 있던 골동품 중 36점과 우표는 500여 장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보관되어 있는 가구들 하지만 그 가치를 알고 있는 건지 보존 상태가 엉망입니다.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매점의 운영까지 시장이 관리하고 그러지는 않거든요 시스템이." (당시 반대 당 한대수 前 청주시장 민선 3기 25대 )

돈 한 푼 없이 기부하면 어찌 생계를 유지하겠냐며 당시 시장은 전시관 옆 작은 매점을 줬는데, 그 역시도 반대 당의 시장이 당선되면서 빼앗겼습니다.

"내가 기증한 내 물건 수시로 본다는 거지 매점에 대한 미련이나 다른 건 없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를 더 화나게 하는 것은 지금의 힘겨운 노년 생활이 아니라 자신이 나라에 바친 전 재산이 천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기증하면 청주시 것이지 자기 재산 아니잖아요. 그런 걸 갖고 이십 몇 년을 끈질기게 계속 그렇잖아요. 장난감도 애들 갖고 놀다가 주면 끝나는 거지 뒤로 뺏어오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前 전시관 관리계장)

왜 관리가 잘 안 되냐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청주시의 대답은 어이없는 수준을 넘어 적반하장입니다. 

"한국에 이런 게 있다 이렇게 빛을 보여주려고 한 게요. 참 내가 괜히 들여왔어. 소장하고 다니면 뭐합니까? 저만 힘들고 볼 때마다 눈물만 나고..."
   
나라를 믿고 전 재산을 쏟아 부었던 기부가 유명무실해진 상황. 지금 그의 머릿 속에 남아 있는 건 오로지 후회뿐입니다.  

(SBS 스브스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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