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에는 광고계 출신 감독들이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고사: 피의 중간고사', '표적'의 창 감독 정도가 그나마 흥행에서 성공하며 안착한 경우다.
광고 분야에서 넘어온 감독들의 충무로 정착이 어려웠던 이유는 매체의 간극을 줄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30초의 미학'이라 불리는 광고는 강렬하고 참신한 이미지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으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때문에 이야기나 메시지보다는 비주얼이나 아이디어가 좀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핵심인 예술이다. 시각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것이 이야기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것도 영상, 음악, 문학, 미술 등의 요소가 거대한 스토리텔링 안에서 총체적으로 아우러지기 때문이다.
광고 감독이 비주얼에 큰 강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스토리 구축 면에선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스타 CF 감독 백종열의 영화 데뷔작인 '뷰티 인사이드'(감독 백감독, 제작 용필름) 역시 그러한 장·단점이 또렷한 영화다.
가구 디자인을 하는 우진은 시장조사차 찾은 가구점에서 이수(한효주)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자신의 결함 때문에 주저하던 우진은 용기를 낸다. 내일이면 얼굴이 바뀌는 운명이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자신을 던져보기로 한다.
알려졌다시피 이 작품은 칸 국제광고제 그랑프리 석권, 클리오 국제광고제 금상 수상에 빛나는 인텔&도시바 합작 소셜 필름 '더 뷰티 인사이드'(The Beauty Inside)를 원작으로 한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뀌는 남자의 로맨스를 그렸기에 이 영화에는 무려 21명의 우진이 등장한다. 성별과 인종, 국적, 나이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이 등장하지만, 분명 영혼은 한 사람이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한 명의 내레이터를 등장시켜 우진의 얼굴은 여럿이지만 영혼은 오로지 우진 한 사람의 것임을 확실히 한다. 21인 1역이라는 설득이 관객에게 가능한 것은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이다.
총 6개 에피소드로 구성된 40분 짜리 광고를 120여분의 영화로 늘리면서 기승전결의 구조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인물 간 사랑이 있다면 위기도 있어야 하고, 위기에 이은 극적인 결말도 필요했다.
'뷰티 인사이드'의 기와 승은 참신하고 흥미롭다. 하지만 전과 결은 진부하고 지루해지고 만다. 판타지의 영역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던 우진과 이수의 사랑이 현실 영역에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고뇌와 갈등이 신파에 가깝다.
약인 것처럼 여겨지던 내레이션도 중반부를 넘어서면 지나치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인물의 내적 갈등과 고뇌는 모두 내레이션에 의해 설명된다. 관객이 보고 느낄 여지를 제한하는 감도 없잖다.
광고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원작에 기대는 바가 너무 크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영화 중반까지의 핵심 장면은 광고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 물론 광고를 보지 않았다면 이런 부분은 참신하고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실제로 광고를 본 사람보다는 안 본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무엇보다 광고에서 빠져나온 창작의 영역에서 빈틈과 허술함을 노출하며 특별할 것 없는 멜로 영화에 머물고 말았다.
21명의 사랑을 받는 단 한 명의 여성이 한효주라는 것도 공감지수를 높인다. 여배우의 미모가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이고 감정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된다는 걸 보여준다. 게다가 무르익은 감성 연기로 멜로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잘 생긴 우진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진도를 나가는 이수의 모습을 보며 일부 관객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외치는 이야기에서 '외면의 미'를 강조한 것 아닌가 하는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영화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8월 20일 개봉, 상영시간 127분, 12세 관람가.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김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