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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스펀지! 너무 맛있어요!"

- 이식증에 관하여

[취재파일] "스펀지! 너무 맛있어요!"

아침에 외신을 훑어보다 '스펀지 먹는 여자'라는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기사를 읽다가 문득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다니던 친구 녀석이 떠올랐습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되면 운동장으로 뛰어나가서 축구공을 차거나 고무줄 놀이하는 게 당시 또래들의 일상이었는데,  유독 그 아이는 친구들과 떨어져 조용히 철봉 근처 씨름장으로 가곤 했습니다.

씨름은 혼자 할 수 있는 경기도 아닌데 왜 그리로 갈까 하는 궁금증이 여러 번 스치곤 했는데,  언제 부터인가 친구들 사이에서 그 아이가 흙 먹는걸 봤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어린 마음에 '배 고파서 흙을 먹나 보다! 그렇다고 흙을 먹나? 맛 없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얼핏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일부 짖궃은 친구들은 그 아이를 놀렸던 것도 같습니다.

한참 나중에야 그 친구의 이상한 행동이 이른바 '이식증' 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음식으로 여겨지지 않는 영양가 없는 것을 먹으려고 하는 충동에 빠지는 섭식 장애를  가리켜 이식증(PICA, 異食症)이라고 합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먹어대는 '까치'를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의학 용어입니다.

이식증은 흔히 만 1세에서 2세 사이에 나타나며 초기 아동기 동안에 스스로 그 증상이 완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섭취하는 물질은 연령에 따라 다양해서  유아와 어린 아동은 페인트, 회반죽, 머리카락, 끈, 헝겊 등을 먹고 연령이 높은 아동들은 동물의 배설물, 모래, 곤충, 잎, 자갈 등을 먹기도 하며  청소년과 성인은 주로 진흙이나 흙을 먹는다고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미국인 이식증 환자가 즐겨먹는 것은 다름 아닌 스펀지입니다.

다섯 자녀를 두고 있는 올해 서른 살의 흑인 여성 아델레는 특히 소파 안에 들어 있는 누르스름한 스펀지만 보면 식욕이 용솟음치곤 한다고 하네요.

아델레가 스펀지를 먹기 시작한 것은 10살 때부터로 당시 사촌 오빠가 집으로 놀러오면 소파 안에 들어 있는 스펀지를 먹곤 했는데 호기심에 따라 먹어본 뒤로 스펀지를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여기게 됐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아델레는 소파 8개와 방석 5장에 들어 있는 스펀지를 먹어 치웠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따라할까 봐 아이들 앞에선 절대 스펀지를 입에 대지 않습니다.

화학제품인 스펀지를 먹는 건 두 말할 나위 없이 대단히 위험하지만 이미 그 맛에 중독된 아델레를 멈추게 하기가 쉽지 않아 담당 주치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를 좀 더 검색해보니 얼마 전에도 비누를 먹는 10대 미국 소녀 이야기가 나왔더군요.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헨더슨은 일주일에 약 5개의 비누와 세탁세제를 섭취하고 있는데 이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초록색 비누라고 합니다. 작은 크기의 비누는 입 안에 넣고 사탕처럼 빨아 먹는 답니다.

헨더슨은 비누를 먹기 시작한 지 6개월만에 의료진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의료진은 헨더슨을 보기 드문 이식증(PICA)로 진단했습니다.

의사들은 헨더슨의 이식증이 스트레스로 인한 것으로 진단했고 병원에 입원해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치료 효과를 봐서 비누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이식증은 정신질환에서 비롯됩니다. 이식증 환자들을 진찰해 보면 특별한 생물학적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나 부모의 학대를 받는 아이들에게 주로 이식증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초기 아동기에 이식증을 보이는 아이들이 제 때 치료받지 못할 경우 9세에서 18세 사이가 되면 폭식증으로 발달할 위험이 있으며 까다로운 섭식과 소화 문제는 후에 신경성 식욕부진증도 일으킨다고 하니 하루빨리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씨름장에서 모래 흙을 먹던 그 외톨이 친구의 가정사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랑 동생이랑 함께 살았다는 것 말고는... 그 후로도 그 친구가 어디서 어떻게 공부를 했고 어른이 되어서 무슨 일을 하며 어디서 살아가는지 전혀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아이는 그 시절,  집안 형편도 어려웠겠지만 그 보다는 사랑에 굶주렸던 걸 겁니다. 그래서 사랑에 배고팠던 허전한 마음을 흙으로 채우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그 때는 몰랐지만 그 녀석이 너무 안쓰럽네요~.

"세상에 이런 일이..." 정도로 가볍게 웃어 넘기려던 외신 기사 한 줄을 보다 문뜩 떠오른 30년 전의 제 친구가, 어디에선가 단란한 가정을 꾸몄기를, 또 자식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쏟아주고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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