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나도 '세계 최대' 노린다…기네스북이 뭐길래?
기네스북을 만드는 기네스 월드 레코드(Guinness World Records)는 맥주 회사 기네스의 이름을 딴 엔터테인먼트 회사입니다. 이 회사가 1955년부터 흥밋거리로 발간한 기네스북은 전 세계에서 1억 권 이상 팔렸습니다. 내용은 흥밋거리일지 모르나 운영은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뤄집니다.
영국 기네스 본사 심판관 초청료만 4천500파운드, 우리 돈 약 700만 원이 듭니다. 왕복 항공료와 숙박비는 별도입니다. 기네스북 등재 절차를 대행하는 한 업체는 "기네스 심판관들은 숙소로 5성급 호텔 이상, 비행기는 비즈니스 좌석 이상으로만 요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는 기네스 월드 레코드사와 대행업체들의 배를 불리는 데 국내 지자체들이 한몫하고 있다는 겁니다.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지자체에서 기네스북에 등재한 기록은 꽤 많습니다. 강원 양구군에서는 지난 2009년 세계에서 가장 큰 해시계가 기네스북에 등재됐습니다.
양구군의 해시계가 세계 최대 타이틀을 얻는 데는 1억 1천6백만 원의 예산이 들었습니다. 울산시 울주군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옹기를 기네스북에 등재하는 데 9천만 원이 들었는데 이 중 제작 비용은 2천5백만 원이었습니다. 제작비보다 등재하는 데 비용이 더 든 겁니다.
울주군 관계자는 SBS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옹기가 만들어진 목적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것"이라며 "그 부분에서는 잘 활용되고 있으며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나마 기네스북에 등재된 후 울주군의 초대형 옹기처럼 박물관에 전시되는 경우도 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거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조형물도 있습니다.
■ 등재에도 세금, 보존에도 세금…누구를 위한 공공조형물인가?
지자체에서 각종 공공조형물에 '세계 최대' 타이틀을 달려는 이유는 기네스북 등재가 관광 산업 활성화에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하지만, 등재되더라도 관광객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등재에 실패해 예산 낭비로 이어진 사례도 있습니다. 일각에서 지자체장의 '치적 쌓기용 등재'라고 지적하는 이유입니다.
충북 괴산군이 지난 2005년 5억 원을 들여 제작한 대형 가마솥은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이 가마솥은 지름 5.68m, 높이 2.2m, 둘레 17.8m로 '세계 최대'를 내세워 기네스북 등재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호주의 질그릇이 이 가마솥보다 더 큰 것으로 확인돼 기네스북 등재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후 옥수수 삶기, 팥죽 끓이기 등의 행사에 몇 차례 동원됐지만 2007년부터는 이마저도 중단됐습니다. 대형 가마솥의 존치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괴산군은 주민 설문 조사를 거쳐 보존하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 개축 비용과 관리 비용 등 추가 예산이 투입됩니다.
괴산군 시설사업소장 관계자는 "현재 조립식 판넬 부분을 한옥 풍으로 개축해 가마솥을 보존하기로 결정했다"며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시각차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주민 설문을 거쳐 유지하기로 했고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주변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오창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회문화국장은 SBS와의 통화에서 "괴산의 가마솥은 예산 낭비의 전형적 사례"라고 지적하며 "다시 한옥을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