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기자의 관심을 끈 것은, 위 씨의 구매 방식이었다. 중국인인 그는 병맥주를 냉장고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배송받았는데, 모두 인터넷 주문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신혼집을 차렸다면, 나오지 못할 장면이다. 한국은 인터넷 술 판매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장면은 마트에서 술 고르는 에피소드가 됐을 것이다.
● 수입 맥주라는 최상의 ‘미끼’
한국에서 수입 맥주란? 유통업계 종사자에게 이렇게 묻는다면 “편의점, 슈퍼, 마트에 가야만 살 수 있는 물건”이라 답할 것이다. 그들 눈엔 맥주가 가게에 안 나올 손님도 나오게 할 물건으로 보일 것이다. 법이 술 유통 관행을 만들었고, 업계는 이걸 응용했다. 편의점 수입 맥주 1만 원에 4캔. 마트 수입 맥주 9천4백 원에 4캔 공식은 이렇게 탄생했다. 마트에서 세계맥주는 그 무엇보다 매력 넘치는 미끼상품인 것이다.
수입 맥주에도 이 기준은 같은데, 세금이 붙는 시점에 또 한 번 ‘배려’가 있다. 수입 맥주는 수입원가에, 국산 맥주는 출고가에 세금이 매겨진다. 수입과 국산이 맞붙을 때, 세율은 72%로 같다. 해외 본사와 수입상은 협의를 거쳐, 잘 팔리는 맥주를 대량으로 들여오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원가를 낮출 수 있다. 수입원가가 낮아질수록 할인 폭은 커진다. ‘박리다매’ 전략을 취하기 쉬운 것이다.
2017년 유례없어 보이는 수입 맥주 돌풍은, 기실 이런 이해관계의 합종연횡이 낳은 결과물이다. 국내 주류업계엔 자기네 쓰린 속을 더 쓰리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맛 없다고 핀잔 듣고, 신제품 개발엔 인색하다고 지탄받던 그들. 최근엔 수입 맥주가 잘 팔린다고, 업계 1위 오비맥주와 2위 하이트진로가 앞다퉈 수입 경쟁에까지 나섰다.
맥주 애호가들에겐 꼴사나운 행태일 수 있다. (스텔라 아르투아, 코로나, 산토리 등 오비맥주가 수입하는 맥주를 셀 수가 없을 지경이다. 하이트진로도 크로넨버그 블랑1664와 싱하, 기린이치방 등을 들여와 팔고 있다.)
● 국산 맥주는 반격의 기회를 잡을까
이런 맥락 탓에, 국내 업체들의 신제품 소식은 그 자체가 관심거리가 됐다. 이번엔 클라우드 이후 무려 3년 만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든 건,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다. 마트 기준 330mL 캔 하나가 거의 850원 수준. 콜라와 비슷하거나 더 싸다.
가성비에 초점을 맞췄는데, 비결은 세테크였다. 맥아 비율을 10% 미만으로 낮추고, 보리와 홉으로 맥주 맛을 냈다. 그 결과 ‘기타주류’로 출시할 수 있었고, 세금은 72%가 아닌 30%만 낼 수 있었다. 업체 측은 개발에 2년을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회식엔 젊은 사원의 발언력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덕분에 안주가 다양해졌다. 삼겹살이나 회 같은 부장님 메뉴는 가고, 피자나 샐러드, 햄버거도 안주가 됐다. 3초 안에 잡미를 잡는다는 광고는, 갖가지 음식에도 손색없다는 걸 강조한 포석이다.
전혀 없던 시장을 노렸고, 약간의 손해를 감수한 도전이다. 이런 점에서 올해 새로 나온 국산 맥주들의 개발 과정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도전이 성공으로, 또 다른 신제품 잉태로 나아간다면, 2017년은 국산 맥주 시장의 작은 이정표가 될 수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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