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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피해자 할머니에게 '버럭'…어이없는 철도시설공단

지하철역 공사에 집 붕괴 직전…도움 요청에도 적반하장

[취재파일] 피해자 할머니에게 '버럭'…어이없는 철도시설공단
“할머니, 집 얻어줬으면 거기서 좋게 살지 왜 여기까지 오는 거야…정말 왜 이러는 거예요?”

“아니에요, 선생님. 저도 거기 있으려고 했어요. 거기서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관리인이 나가래요. 월세를 안 넣어줘요. 시공사가. 저 추운데 갈 데가 없어서 다시 무너질 거 알면서도 집으로 들어갔어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어이, 거기 카메라 끄세요. 질문한 거 답할 때만 찍으라고 했죠. 이런 식으로 하면 나갈 겁니다. 카메라 끄라고요!”

쉽게 흥분하는 편이 아닌데도,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믿을 수 없어 얼굴이 벌게졌습니다. 손이 떨리고 덩달아 목소리도 떨렸습니다. 침착해야지, 침착해야지, 하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여든 두 살 할머니를 향해 반말 조로 말하고 기자를 향해 내내 소리를 지르며 고압적으로 무례하게 행동했던 이 남성은 한국철도시설공단 수도권본부 건설총괄처 부장이었습니다.

그제 저녁, SBS 8뉴스를 통해 자신의 집에서 영문도 모르고 쫓겨나게 된 한 할머님의 기구하고 억울한 사연을 보도해 드렸습니다. (해당 기사 보러 가기) 기사를 보고 연락해 온 시청자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할머니를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분도 있었습니다. 직접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 제가 겪은 일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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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모시고 왔어요. 같이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인터뷰를 위해 철도시설공단에 가던 날, 할머님을 부축하며 나타난 아드님은 연신 송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원에 계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기자와 약속한 10시까지 서울 용산에 있는 철도시설공단 건물에 도착하기 위해선 아마 새벽부터 준비했을 겁니다. 전화로 통화할 때만 해도 이렇게 연세 지긋한 분일 줄 몰랐는데 아드님 역시 머리가 하얗게 센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었습니다.

벌써 5년째 시행사(철도시설공단)에 민원을 넣고 하소연을 하고 있지만, 단 한번도 집이 지금 어떤 꼴이 되어있는지 보러 온 적 없다며, 아드님은 담당자 얼굴을 보고 한번 이야기라도 나눠보겠다고 직장에 연차를 내고 나타났습니다. 여든 넘으신 노모에게 벌어진 일은, 생각만 해도 자식된 도리로서 목이 메이고 가슴이 답답할 노릇이었습니다. 아드님은 내내 침통해 하셨습니다. 취재를 위해선 아드님에게도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런 표정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노모와 아드님을 모시고, 건물로 들어가 철도시설공단 담당 공무원을 찾았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의도했던 상황은, 시행사와 피해자 가족들을 대면하게 해, 오해가 있다면 풀고, 적절한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할머니의 멀쩡했던 집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간 시공사, 모 건설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가 있는 상황입니다. 홀로 사는 할머님이라고 무작정 담을 밀고 들어와 건물까지 무너뜨린,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저질러놓고, 할머니에겐 '담장 다시 지어줄 건데 왜 일을 복잡하게 만드느냐'며 협박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쯤되면 누가 봐도 충분히 시행사가 나서야 할 시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민간 업체가 아닌 공단입니다. 더더욱이나 책임감을 갖고 대응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사죄를 해도 시원찮을 일입니다.

철도시설공단 건물로 들어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담당 과장에게 설명했습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어제(1월 1일)가 휴일이다 보니 통화를 할 수 없었노라고. 담당자 분들끼리 어떤 방식으로 어떤 입장을 밝히실 건지 충분히 논의하실 시간을 드리겠노라고. 어차피 할머님과 아드님에게 추가로 여쭐 것도 있으니 저는 1층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과장은 저에게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며 곧장 담당 부서 사무실이 자리한 3층으로 할머님과 아드님을 모시고 올라오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테이블에 할머님과 아드님을 모시고, 가져 온 노트북으로 미리 찍어둔 영상을 재생할 준비했습니다. 시행사가 한번도 현장에 나와본 적 없다고 하니, 실제 이 집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0여분 뒤, 부장이라는 사람이 과장과 나타났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할머니에게 구해 준 원룸 방에서 잘 살 것이지, 왜 여기에 나타났냐고 역성을 냈습니다. 기자에겐 전날 공문을 보내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 인터뷰는 어떤 형태(서면, 전화, 영상인터뷰)로 할 것인지 허락을 받아야만 응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들어와 인터뷰를 하겠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무례한 상황이 어딨냐고 말했습니다.

"앞서 과장님께 충분히 설명을 한 것 같은데요, 연초부터 이런 일로 응대하게 되신 점은 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요. 기다리라고 하신다면 오늘 뉴스가 나가기 직전까지, 오후 늦게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으니 입장을 정리해 들려주시죠." 

부장은 대전에 있는 철도시설공단 본사에 연락해 허락을 받지 않으면 인터뷰를 할 수 없다며 전화를 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과장이 번호를 알려주었고, 담당자와 통화를 하니 인터뷰를 진행하라는 말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인터뷰가 시작되나 했더니, 이번엔 더 황당한 말을 했습니다.

"준비한 질문 외엔 추가질문을 하지 않겠다고 싸인하세요."
"네? 이런 식의 취재가 어디 있습니까? 기자에게 싸인을 요구하다니요?"
"지금 하시겠다고 말한 질문 4개 외엔 더 하지 말라고요. 다른 질문 하면 바로 나가겠습니다."

순간, 이렇게 굴욕적으로라도 인터뷰를 진행해야 하나 고민이 됐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도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저 역시 난감해질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기자가, 취재 현장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는 건, 기자 본인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들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저는 기사에 '철도시설공단 측은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라고 쓰면 그만이었습니다. 그게 더 시청자의 공분을 끄집어내기 쉬웠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렵게 오신 아드님과 할머님에게 뭐가 됐든 답이라도 들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공사가 말이 안 통하니, 할머니네 가족에겐 시행사가 유일한 동앗줄인 셈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싸인을 할테니, 성실하게 대답해 주세요."

싸인을 했고, 그제서야 인터뷰가 시작됐습니다. 질문을 하니, 해당 부장은 눈을 내리깔고 미리 부하 직원에게 가져오라고 부탁해 온 A4 한 장짜리 공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황당했습니다.

"부장님, 이렇게 인터뷰하시면 방송에 못 나갑니다. 대화를 해 주셔야죠. 이렇게 읽으실 거면 저희가 여기까지 와서 왜 인터뷰를 하자고 했겠습니까?"

"준비한 질문 외엔 추가 질문 안된다니까? 왜 말을 못 알아 들어요? 거기 질문 4개 외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지금 일이 이렇게 됐는데, 그렇게 원론적인 입장만 이야기하시는 겁니까? 피해자 가족에게 설명을 해 주셔야죠."

"선생님, 그러지 말고 저 좀 도와주세요. 저희 집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 너무 춥고 힘들어요. 저희 집 좀 고쳐주세요. 저 집에 다시 가고 싶어요. "

"거기 카메라, 내가 대답할 때만 찍으라고 했죠. 이렇게 약속한 대로 진행안되면 저 인터뷰 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준비한 질문 4개에 대해 간신히 두 세 문장으로 대답하고 허망하게 나가버렸습니다. 카메라로 촬영하는 영상기자에겐 왜 이렇게 계속 찍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머니는 혹시나 하는 기대가 무너지자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그때 제가 느꼈던 죄송함과 황망함은...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정도입니다. 괜한 짓을 한 걸까, 도와드리려고 했던 건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자책감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회사로 들어와 기사를 쓰는데, 계속 울컥했습니다. 기자가 대동한 자리에서조차 이런 식인데, 할머니네 가족이 그간 겪어왔을 모멸과 수치심은... 상상이 안될 정도였습니다. 그날 저녁 방송을 통해 기사가 나간 뒤, 그제서야 철도시설공단 측에선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오고,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할머님까지 모시고 가서 대화를 하자고 할 땐 무성의하게 준비한 대답만 하더니, 전화를 걸어 와 추가로 해명하고 싶은데 다시 만나면 안되냐고 사정했습니다.

혹시나 기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처럼 과장되게 각색했다고 반박해 올까 봐, 그날 있었던 모든 대화의 촬영본을 활자 형태로 풀어두었습니다.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았습니다. 철도시설공단 측이 이번 제 글에 대해 반박하고 싶은 내용이 있거든 두고 온 명함에 있는 제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주시길 바랍니다. 원하신다면 그날 있었던 인터뷰 현장을 찍은 영상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철도시설공단이 이번 기사가 나가고 바로 다음날 아침 일찍 기자들에게 보낸 보도자료를 첨부합니다.
[취재파일] 철도시
'관내 매교역 출입구 공사 과정에서 인근 가옥에 피해를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요? 정말 송구하게 생각하십니까? 기사가 나가고 하루가 지난 어제 늦은 저녁, 아드님과 통화했습니다. 아직도 공단과 시공사로부터는 전화 한 통 없다고 하더군요.

철도시설공단 관계자 여러분. 기자들에게 쩔쩔대며 설명하기 전에, 할머님과 가족들에게 사과부터 하십시오. 송구는 최소한 그런 정도의 대응을 한 뒤에나 하는 말입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으니, 할머님 댁에 직접 가서 지금 어떤 상황인지, 지금껏 여러분이 문서로 '기다리시라'고만 답했던 피해자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한번 만이라도 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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