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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네, 여전히 있습니다"

과불화 화합물,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취재파일] "네, 여전히 있습니다"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
우리에겐 <어벤져스> 헐크로 더 친숙한 배우 마크 러팔로가 주연을 맡은 또 다른 영화 <다크워터스>는 환경 오염에 대한 이야깁니다. 대형 로펌 변호사로 잘 나가던 그에게 할머니의 지인이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찾아옵니다. '도와달라'며 자신의 농장 곳곳을 찍어온 비디오를 두고 갑니다.
목숨을 잃은 190여 마리의 젖소들, 검게 변해버린 그들의 치아, 부푼 쓸개, 그리고 미친 듯 날뛰는 이상 행동들까지 철저하게 조사해달라고 합니다. 농장 주인은 원인을 하나로 지목합니다. '듀폰'. 프라이팬을 만드는 화학 기업인 듀폰사가 제조 과정에서 버린 화학 폐기물이 악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이란 듀폰사의 슬로건은 궁색하기를 넘어 무서워집니다. <다크워터스>는 그 무서운 싸움을 시작해온 우리 모두의 이야깁니다. 
 

과불화 화합물이란?


마크 러팔로는 영화에서 PFOA라는 수상한 단어를 발견합니다. 듀폰사의 각종 내부 기록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단어를 그는 원흉으로 지목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90년 후반부터 2000년 초반까진 인터넷에 검색해도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단어였습니다. 
PFOA는 과불화옥탄산의 줄임말로, 과불화 화합물의 일종입니다. 과불화 화합물은 여러 개의 탄소와 불소가 강하게 결합한 화합물인데 탄소가 몇 개 달라붙느냐에 따라 그 종류가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4천 여개 정도 알려져 있지만 PFOA(과불화옥탄산)과 PFOS(과불화옥탄수폰산)이 가장 유명합니다.
과불화 화합물은 물이나 기름을 밀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물이나 기름이 스며들면 안 되는 제품들의 코팅제로 유용했죠. 방화복, 프라이팬, 종이컵, 식품포장지, 통조림, 화장품을 사용하실 때 반질반질한 겉면을 손으로 쓸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코팅제를 발라 놓은 덕분인데, 이 코팅제에 과불화 화합물이 첨가되는 겁니다. 
 

죽지 않는 '좀비 화합물'


과불화 화합물에겐 '좀비 화합물'이란 별명이 있습니다. 잘 죽지 않고 살아 남는다는 뜻입니다. 위에서 과불화 화합물은 탄소와 불소가 강하게 결합했다고 설명드렸죠. 말 그대로 강하게 결합해 있어서 시간이 지나도 잘 분해되지 않습니다. 보통 화학 물질에겐 원래 물질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인 '반감기'가 존재하는데, 과불화 화합물은 이 반감기가 다른 물질에 비해 긴 편입니다. 체내 PFOS 혈청 반감기는 약 5.4년이고 PFOA는 약 2.3년 정돕니다. 
이렇게 분해가 늦다보니 우리 체내에 쌓이고 잔류하면서 문제들을 일으킵니다. 먼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PFOA와 PFOS가 출산율을 감소시키고, 임산부의 혈압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을 저해하고 무엇보다 신장암을 비롯해 각종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고 봅니다. 실제로 국제 암연구소는 PFOA를 1급 발암 물질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수입과 제조 금지하자"


해외에서 과불화 화합물의 위험성에 동의하고 규제가 필요하다고 합의한 첫 출발점은 2001년 5월 스톡홀름 협약입니다. 과불화 화합물 같은 잔류성 유해물질을 규제하자고 입을 모은 첫 국제 협약이죠. 이 협약에 비준한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 각자 상황에 맞춰 규제안을 마련해오고 있습니다. 
먼저 미국은 과불화 화합물이 수돗물이나 식수를 통해 유입될 수 있다는 점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관련 법을 만들어 정화, 보급, 측정 단계에 걸쳐 6개 과불화 화합물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수질 감시항목에서 발견되는 과불화 화합물 허용 기준치를 리터당 4나노그램까지 낮췄습니다. 세계보건기구 기준인 400보다 한참 낮은 수준입니다. 
프랑스 의회도 지난 달엔 과불화 화합물이 첨가된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이달 들어선 과불화 화합물 사용과 제조를 금지하는 법안을 심의하고 있습니다. 2030년부턴 과불화 화합물이 함유된 직물제품도 수입과 제조가 불가능해집니다. 일본도 2021년 10월부터 PFOA가 함유된 종이, 직물, 세정제 등의 제조와 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규제가 없진 않지만…

식약처

그럼 우리 상황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규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 정부는 과불화 화합물 두 종(PFOA, PFOS)에 대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연관된 관계 부처만해도 환경부, 식약처, 산자부, 해수부, 농림부, 소방청 등 다양하죠. PFOA는 2019년부터 '사용금지'되고 있고 PFOS는 2009년부터 '사용제한'되고 있습니다. 
모니터링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식약처는 <과불화 화합물 통합 위해성 평가 보고서(2022)> 등에서 PFOA나 PFOS 두 종에 한해 과불화 화합물이 얼마나 우리 몸에 해로운지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식약처는 PFOA와 PFOS의 위해지수(HI)가 모두 1보다 낮아 안전하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체내 노출량이 기준치의 13.3~56.7% 정도에 불과해 우려가 낮다는 거죠. 다시 정리하자면, "검출이 되긴 하지만 그 수치가 미비하기 때문에 몸에 큰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해외에선 퇴출 움직임이 강해지자, 정부는 뒤늦게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을 중심으로 오는 2025년 12월까지 다시 모니터링 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종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15종까지 조사 대상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결과가 나오더라도 모니터링은 모니터링일 뿐, 강제력을 가진 기준이 될 순 없습니다. 우리 몸에 정말 얼마나 유해한지, 그 유해함을 차단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추가로 마련해야 할지, 제품에만 기준을 마련할지 식수에도 마련해야 할지, 그 책임은 정부, 지자체, 기업 중 누구에 있는지 등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란거냐?"

국내 산모 모유 과불화 검출

과불화 화합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김주희 교수님(경희대 간호과학대학)의 도움을 받아 실험을 재연해볼 수 있었습니다. 김주희 연구팀이 2022년 발간한 한 논문의 핵심 주제는 "산모의 모유에서도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된다"였습니다.
어제자 <SBS 8 뉴스>에 해당 기사가 나간 이후 많은 분들이 질문 사항을 댓글과 메일로 남겨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공유할 만한 내용이 있다고 생각돼 취재를 보충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깁니다.

Q1. 어떻게 산모에게 전달되나?
우선 여러 요인이 산모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산모가 생활하는 주변 환경, 입는 옷, 스트레스, 먹는 음식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변수는 음식입니다. 아이스크림, 통조림, 생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규제를 만들어 과불화 화합물을 규제한다고 해도, 사실 완벽한 규제는 불가능합니다. 규제가 생기기 전에 만들어놨던 물품이나 규제 대상이 아닌 물품에도 얼마든지 과불화 화합물은 들어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물품들이 사용 후 폐기되면 그 안에 있던 과불화 화합물이 토양과 대기를 타고 주변으로 퍼집니다. 하천과 바다를 타고 이곳 저곳을 떠돌다가 그 곳에 살고 있는 생선의 몸에 쌓이는 겁니다. 그 생선이 우리 식탁에 올라오게 되고 산모에게 전달되지요.

Q2.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나?
과불화 화합물은 보통 분자량이 태반을 통과할 정도로 작아 임신 중 태아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또한 모유 수유를 통해서 태어난 신생아에게도 전달될 수 있습니다. 대사 기능이 취약한 신생아는 오염 물질이 몸에 머물게 되는 잔류성이 훨씬 더 높아 엄마보다 과불화 화합물 축적률이 높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렇게 노출된 과불화 화합물은 태아의 신경학적 발달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과불화 화합물이 자폐아의 자폐성에도 영향을 줬다고 합니다. 과불화 화합물에 노출된 영아 집단에서 과잉행동장애가 유의미하게 높아졌다는 국내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Q3.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냐? 아무 것도 먹지 말라는거냐?
가장 많이 달린 댓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거냐?" 이에 대해 김주희 교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수산물을 아예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수산물엔 우리 몸에 필요한 다른 중요한 영양소도 많습니다. 다만, 수산물에서 과불화 화합물이 검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 뒤, 아이를 가진 기간 만큼은 주의하자는 것이지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심하는 것과 사실조차 모른 상태로 당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니까요. 
또, 모유를 정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셨습니다. 모유는 아이 입장에선 먹는 식품이지만, 부모 입장에선 배출물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모유를 식품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고, 식약처의 관리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신생아가 섭취하는 만큼, 모유도 관리 대상으로 인정해가야 한다는 말씀 덧붙여주셨습니다.
프라이팬에 대해서도 궁금하신 분 많으셨습니다. 프라이팬 코팅제에서 검출이 많이 보고되고 있는 만큼, 스테인레스 펜을 쓰시거나 식초로 펜 겉면을 한 번 닦아 사용하시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Still here"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갑니다. 20년 가까이 같은 주제로 법정에 선 변호사에게 판사는 말합니다. "아직 계셨군요?" 그러자 변호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합니다. "네 여전히 있습니다(Still here)." 아마도 과불화 화합물의 존재와 그 부작용에 대해 알았으니, 이제 계속 관찰하고 관리해야 할 책임은 시청자, 즉 우리들에게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모든 화학 물질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이로운 점은 이용하되, 해로운 점이 있다면 관리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당장 하루 아침에 우리 몸을 망가뜨리진 못하겠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 해외보다 다소 늦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관련 규제를 마련하는 것, 아이를 가진 중에는 수산물에 과불화 화합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요리할 때 불편하더라도 스테인레스 펜은 어떨까 생각해보는 것. 모두 "여전히 여기에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화학으로 더 나은 삶을"이란 듀폰사의 구호와 "여전히 있습니다"라는 변호사의 외침은 그 양면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합니다. 과불화 화합물도 마찬가집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되 "여전히 이곳"에서 관찰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 [단독] 모유에서 '과불화' 검출…증가세에도 안일  (5/6일자 8뉴스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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