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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이금희 어머니 '세월호, 그 1000일의 기다림'

<앵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천일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여전히 차가운 바닷속에 잠겨있고, 그곳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 학생의 어머니, 이금희 씨를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어려운 걸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셨느냐고 여쭤 보기 참 송구스러운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많은 분이 걱정을 하고 계시는데.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저는 2014년 4월 16일에 내려간 것처럼 똑같이, 몇 년은 지났지만, 딸을 기다리는 엄마니까 팽목에 있죠. 저희가 바다를 보고 살아요. 배를 타고 1시간을 나가면 우리 은화가 그 바닷속에 있데요. 그런데 제가 불편하다,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도 엄마로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인 것 같고. 제가 1천일을 앞두고 그날 새벽에 현장을 들어갔다 왔습니다. 거기서 아이들에게, 그 9명에게 꽃을 던져주는데, 그 바닷바람이 세서 손이 시리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을 느끼는 게 은화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그리고 은화, 다윤이, 현철이, 영인이,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재근 님, 혁규, 이영숙 님께 미안하다고. 1천일 동안 바닷속에 있게 해드려서 미안하다고. 최선을 다해서 찾는데,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그 말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떠올리기가 괴로우시겠지만, 참사 당일의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그날 사고 소식은 어떻게 받게 되셨는지.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아침에 은화에게 8시 55분에 전화가 왔어요. 밥 먹었다고, 그런데 배가 약간 이상하다고. 그런데 아이가 그렇게 배를 타고 다닌 기억이 없어서 혹시 뱃멀미를 하나 이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9시 12분에 또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배가 45도가 기울었는데. 물건이 한쪽으로 다 쏠리고. 그리고 핸드폰이 약간 흠집이 났고, 구명조끼 입고 있다고. 그래서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니 그랬더니, 구명조끼 입고 가만히 있으라고 그런다고.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듣는 아이였어요. 그리고 그 큰 배가 설마 구조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죠. 은화 놀랬을 거니까 가서 은화 안아서 데리고 올 거라고. 옷 젖었으면 갈아입혀서 데리고 올 거라고. 그리고 은화 오빠에게 전화해서, 동생 사고 나서 전원 구조됐대. 엄마가 가서 은화 데리고 올 테니까 저녁 알아서 먹고 있어. 그러고 내려간 게 1천일입니다. 제가.]

아무도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을 텐데, 그 후 은화 양을 기다리면서 가족들의 삶이 많이 힘들어지셨죠. 그 이후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되셨다고 들었는데.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많이 힘들죠. 은화 오빠가 그 아픈 모습을, 20살짜리가 보고 겪고 생활을 해서 일단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어른을 잘 안 믿고, 은화 오빠가 엄마가 해주는 밥 하루에 두 끼만 먹었으면 좋겠다는 게 소원이래도 지금. 그런데 그것을 못 해주고 있습니다.]

어머님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그 아픔 때문에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을 갖고 계실 텐데, 어머님뿐만 아니라 희생자 가족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일이 많았죠 그동안.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많았죠. 저 같은 경우도 팽목 등대에 가 있으면 어떤 분들이 지나가면서 그 이야기를 하세요. 이렇게 시간이 오래됐는데 뭐가 남았다고. 유난도 떤다고 그러시는 분들도 계시고. 또 그만하라고, 얼마 받냐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그래도 이 세월호가 그래도 유지가 되는 것은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를 위해서, 처음 내려갔을 때 물 먹여 주시던 분, 그리고 우리 눈물 닦아 주셨던 분. 지금도 저희가 팽목에 있으면 물 보내주시고, 김치 보내주시고, 쌀 보내주시고, 와서 손잡아주시고, 안아주시고, 격려해주시는 분이 많기 때문에 견디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천일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내시는데, 그런 많은 분의 따뜻한 위로가 많은 도움이 되셨을 텐데, 무엇보다도 아이를 데려와야겠다는 일념이시겠죠, 지금도.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그럼요. 내 아이가 거기 있습니다. 생존자가 이야기를 했고, 명부에 있고, 저랑 통화를 했고, 그런데 내 목숨보다 소중한 딸을 거기에 놓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찾는 게 지금은 제일 급한 것 같아요.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요.]

지금 세 번째 겨울을 맞고 계신데, 1천일, 그 긴 시간들을 뒤돌아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1천일, 그냥 사실은 2~3일 지난 것 같아요. 믿어지지가 않아요. 겨울을 세 번째 보낸다는 것. 내 딸이 없이 이렇게 1천일을 숨을 쉬고 살아있다는 것조차도 미안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참사를 겪으면서 많은 아픈 분들을 만났어요. 광주 5·18 어머님들도 만났고, 대구 지하철 참사 어머님도 만났고. 아픈 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이 1천일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에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말 못하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해결을 잘해서 이것이 판례가 되고, 예가 되고, 304명의 죽음이 헛된 죽음이 되지 않게끔, 그래서 대한민국이 사람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세상, 사람이 살기에 좋은 나라, 그리고 우리 은화 오빠, 영인이 형, 은화 친구들,, 다윤이 언니, 혁규 동생이 조금 더 존엄한 대접을 받으면서 살 수 있는 나라이기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민들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금희/세월호 미수습자 '조은화' 학생 어머니 : 제가 은화를 수학여행을 보낸 것은 추억을 만들려고 보낸 것입니다. 바닷속으로 보낸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우리 은화가 '엄마'하고 부를 것 같습니다. 집에 가면 '엄마'하고 문 열고 올 것 같고, 팽목에서 이러고 있으면, 엄마 왜 있어요 여기, 이러고 와서 엄마 놀랬죠, 이럴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일을 겪어보니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루하루 사시면서 만질 수 있는 가족들, 밥 먹을 수 있는 가족들, 그리고 손 잡을 수 있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고, 서로 사랑한다고 말 하시고, 서로 이해해 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세월호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지겹다, 그만하라, 그리고 웬만큼 해라 그렇게 말씀하지 마시고, 세월호 인양할 수 있게끔, 9명 다 찾을 수 있게끔, 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이런 일로 너희 아이들이 그랬다더라, 이런 일로 너희 가족들이 그랬다더라, 그것은 알 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빨리 인양이 돼서 은화 양이 가족들 품속으로 빨리 돌아올 수 있기를 저도 기원하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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