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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forced to work' 그리고 징용…국제표준과 한일협정 '유감'

[월드리포트] 'forced to work' 그리고 징용…국제표준과 한일협정 '유감'
● 일본 우파는 '열폭 중'

"against their will…forced to work" 누가 봐도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표현이죠. 사토 구미 일본 유네스코 대사가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쓴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다"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죠. 기시다 외무장관은 이틀 연속, 스가 관장장관도 하루 두 번 있는 기자회견 때마다 같은 소리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 사토 구미 일본 유네스코 대사가 'against their will, forced to work' 발언하는 모습

일본 우파들은 속된 말로 '열폭 중'입니다. 자민당 일부 의원들은 'forced to work'라는 발언이 나오게 된 경위를 파악하겠다면서 외무성을 조사하겠다는 움직임입니다. 총리 관저 쪽에서는 "직업 외교관으로 실격이다", "한국에 당했다"는 격한 반응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 우파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한술 더 떠서, "한일관계 수복(회복)불가능"이라는 제목을 뽑았습니다. 수교 50주년 기념식에 양국 정상이 교차 참석한 것을 계기로 극적인 반전이 만들어졌는데, 이번 세계유산 '강제노동' 논란으로 완전 파탄이라는 악담입니다.

세계유산 등재라는 자신들의 잔칫상에 고춧가루를 뿌린 것은 물론이고 외교적으로 뒤통수를 쳤다는 식의 감정적인 선동도 보입니다. 형식적으로는 외부 전문가 인터뷰를 거치고 있지만, 산케이의 반응은 일본 우파의 '분노와 위기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 국제표준은 명백한 '강제노동'

그렇다면 강제노동에 관한 국제적인 상식과 정의는 어떻게 돼 있을까요? 1932년 발효된 강제노동협약의 '강제노동' 정의입니다.

"the term forced or compulsory labour shall mean any work or sevice which is exacted from any person under the menace of any penalty and for which the said person has not offered himself voluntarily."

강제노동을 "자발적으로 제공되지 않은, 위협에 의해 강요된 모든 노동과 서비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문의 강제노동 피해 서술에는, 이제는 익숙하기까지 한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1946년에 나온 뉘렌베르그 국제전범재판소 판결문에는 "were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이 나오고, 2012년 판결문에도 "forced to work in a munitions factory"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설명하는 강제노동자 의미는 더욱 익숙(?)합니다. 2012년 ILO 아프리카 지역사무소 해설자료입니다. "a forced laborer is someone who is compelled to work against their will / an individual forced to work against his or her will"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노동을 강요당하는 것이 바로 '강제노동', 사토 구니 일본 대표의 발언과 한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 그런데 일본 정부는 왜?…결국 한일협정 '유감'

이렇게 명백한 표현을 두고, 일본 정부는 왜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다"라고 억지를 쓰는 걸까요?

일본 정부는 "조선인 징용공(징용피해자)들은 식민지 전시동원이기 때문에 강제노동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시 체제의 강제동원으로 넓은 의미의 강제성은 있지만 강제노동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앞서 ILO의 '강제노동' 규정과 관련해, 합법적인 예외가 두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교도소 죄수 등을 상대로 한 교화를 위한 노역 부과입니다. 그리고 두번째가 징병제 국가의 병역 의무가 합법적인 예외로 인정됩니다. 일본은 '징용'은 식민지 전시동원, 즉 국가에 의해 부과된 의무였기 때문에 '강제노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의 황당무계한 억지는, 결국 1910년 경술국치 '한일병탄조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출발합니다. 불법적인 국권강탈인 한일병탄을 일본은 "당시는 합법적이었다"라고 주장합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이뤄진 '징용'은 국민동원이며, 나아가 그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도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눈이 뒤집힐 소리고 당장 주먹이 날아갈 상황입니다. 뿌리깊은 한일 갈등의 근원이기도 하죠. 그러나 당장 전쟁할 생각이 아니라면 외교로 풀 수밖에 없죠. 그래서 불완전했던 한일협정이 유감입니다.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입니다. 한일병탄 자체가 불법이며 원천무효라는 우리 입장과 병탄 자체는 합법이나 1945년 8월 15일 이후 무효가 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조정한 것입니다.

한일기본조약은 한글본과 일어본, 그리고 영문본 3개 언어로 작성됐습니다. 그리고 양국의 해석이 상충할 경우 '영문본'을 우선하게 돼 있습니다. 문제의 영문본에는, "이미 무효"라는 문구가 "already null and void"로 표현돼 있습니다. 한일병탄이 그 당시에는 유효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징용을 강제노동과 끊임없이 분리하고, 중국과 서양 위안부 피해자와 조선인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강제성을 나눠보려는 일본의 어처구니없는 태도가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일본으로서는, 한국과 중국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이 확산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입장도 "청구권 없음"입니다. 일본 정부는 혹시 이번 일을 계기로 '징용 피해자 소송'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변하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기시다 외교장관은 "이번 발언(강제노동 인정 발언)이 청구권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대해 한일 하이레벨(외교장관 회담을 의미하는 듯합니다)에서 합의가 있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 관계 개선의 분수령은 결국 '아베 신담화'

당초 세계유산 문제는 한일관계 개선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됐죠. 6월 21일 외무장관 회담과 22일 양국 정상의 수교행사 교차참석이 성사될 때만 해도 그랬습니다.

사실 외교적 수사는, '서로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를 남기는 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한일관계에 있어서, 이런 상식은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강제노동 첫 인정'이라는 '명분'을 얻고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라는 실리'를 챙기는 식으로, 서로 각자 편한 주장을 하면서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지난달 21일 양국 외교장관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특히 일본이 그렇습니다. 기시다 외교장관을 비롯한 자민당 내 그나마 비둘기파로 불리던 인물들이 궁지에 몰렸습니다. 요미우리, 산케이 등 우파 언론은 '강경대응'을 주문하고 있고, 아베 정권 내 강경파 입지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한일관계는 8.15를 전후해 나올 것으로 보이는 '아베 신담화'에 의해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베 총리가 이른바 아베 색깔을 확실하게 내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내각결의(연립내각 공명당 출신 장관도 동의해야 하는데, 공명당은 아베 총리 생각과 달리 '사죄' '침략전쟁 인정' 입장입니다)도 건너 뛰고 총리 개인 담화로 발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총리 개인담화로 격은 낮추되, 내용은 마음대로 하겠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강제노동 첫 인정' 논란으로 일본 우파들 사이에는 "한국에 당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때문에 지지층인 우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아베 총리는 신담화의 '아베 색깔'을 더 강화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 한달 여, 한일관계는 크게 출렁일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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