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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운전석에 앉아만 있어도 음주운전?…기준은?

<음주운전수사론>으로 살펴본 음주운전의 기준

하루에 평균 732명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된다.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술 마시고 운전했던 120만 명이 면허 정지나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중에 50만 명은 2회 이상, 19만명은 3회 이상 적발된 상습범이었다.

"술을 마시면 운전하지 말아야 한다"는 보편타당한 명제이겠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비도 오는데 단속하겠어', '대리비 아까운데...' 하면서 취중에 운전대를 잡는다. 음주운전은 습관에 가깝다.

걸리면 '아 진짜 재수 없네' 하기 일쑤다. 세 번 넘게 적발됐다면 적어도 그 10배 이상은 음주운전한 전력이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간은 단속을 피했기에 이번은 '재수 없었다' 그러는 것.

최근 경찰교육원에서,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여 <음주운전수사론>이란 책을 펴냈다.

음주운전수사론

일선 경찰관도 헷갈리고 궁금해하는 내용을 사례별로 묶어 설명했다고 한다. 1~12장으로 구성돼 있고 
6백 쪽 가까운 분량이다. 1장 개관에서는 음주운전 관련 통계와 음주운전으로 단속되는 경우를 판례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선 음주단속 전반에 대해, 3장은 음주측정, 4장은 음주측정 거부, 5장 위드마크 공식, 6장 체포절차 7장 음주교통사고 8장 수사서류 9장 교통형법 10장 형사처벌 11장 행정처분 12장 구제제도다.

경찰 내부용으로, 어디까지나 수사를 위한 책자이나 알아두면 좋은 내용이 많아 일부를 간략히 정리했다. 단,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는 요령 같은 건 없다고 미리 밝힌다.

1. 딱 소주 1잔 마셨는데... 음주측정기를 불면 걸릴까 안 걸릴까.

음주운전 단속대상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이상이다. (0.05%~0.1%는 면허정지, 0.1% 이상은 면허 취소. 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거듭했을 때는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음주운전'에서 정의하는 '음주'는 측정시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이상 나올 만큼의 음주다. 문제는 이 수치가 운전자 특성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측정기 자체의 오류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나이, 성별, 건강상태, 피로도, 함께 먹은 음식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소주 0잔이면 통과, 그 이상은 적발' 이런 식의 정답은 없다.

다만 이 책에선 위드마크 공식(스웨덴 생리학자 위드마크가 만든 공식, 시간이 지난 뒤 음주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에 따라 몸무게, 성별, 마신 술의 양, 술의 농도를 특정해 계산한 결과를 전한다. 이에 따르면 통상 몸무게 70kg 남성이 360ml 용량, 19% 도수의 소주 1병을 마셨다면 4시간 6분이 지나야 운전할 수 있다. 몸무게 60kg 여성은 같은 양을 마셨을 때 6시간은 지나야 한다. 같은 체중의 남성이 생맥주 500cc 4잔을 마셨다면 5시간 22분, 역시 같은 체중의 여성은 7시간 53분이 지나야 운전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알코올 분해능력이 여러 이유로 많이 떨어지는 사람이라면 소주 1잔을 마셨더라도 적발될 가능성이 있다.

책에선 참고로 미국 UC센디에이고 대학의 연구결과를 전했다. 1994년부터 2008년 사이에 사망자를 낸 교통사고 150만 건을 분석한 결과, 맥주 반 잔에 해당하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1% 상태에서도 교통사고 확률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소량의 음주로 혈중 알코올이 거의 검출되지 않더라도 교통사고 확률은 평소보다 37% 높아진다는 것이다.

소주 1잔을 마셨더라도 체질에 따라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지 않을 순 있으나 운전시 사고 확률은 평상시보다 높아진다는 건 분명하다.
 
2.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음주운전은 '음주운전'인가 아닌가.


도로교통법에 나와 있는 '운전'의 정의는 이렇다. "도로에서 차마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이다. 이 정의에 따라 '도로가 아닌 곳'이면 운전이 아니고, 차마를 사용한 게 아니면 운전이 아니고,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지 않으면 운전이 아니게 된다.

도로는 도로법, 유료도로법 등에서 규정한 도로인데,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 곳'을 보는 게 더 이해하기 쉽다.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 곳은
-일반인과 학생의 차량출입이 통제되는 대학구내
-출입이 통제, 관리되는 아파트 단지 내 도로
-일반 공중이나 차량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주차장
-출입이 통제된 공사현장
-차량 통행을 통제하고 있는 미개통 도로

...등이다.

차가 다닐 수 있다고 해서 모두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다. 대략 일반 차량이 통제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으면 도로로 인정되지만(경찰의 통제가 미치는 공공의 구역이란 의미에서), 같은 곳이라도 출입이 통제되는 대학 내나 아파트 단지 내 등은 도로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출입 통제가 엄격했느냐, 느슨했느냐에 따라 도로로 인정되는 경우도 있다. 대학의 경우에도 축제기간에 일반에 개방돼 있을 때는 도로로 인정된 판례가 있다.

이렇게 '도로'를 까다롭게 정의하는 이유는, 교통사고가 났을 때 당시 운전자가 음주 상태로 확인됐다면 그 장소가 도로냐 아니냐에 따라 음주사고 여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다. 음주사고일 땐 운전자가 져야 하는 형사 민사 책임이 더 커지는데다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술 마시고 운전을 했을 때, 아파트 단지 내 통로 출입이 통제되지 않아 도로로 인정되면 음주운전, 도로가 아닌 곳으로 본다면 도로교통법상으로는 음주운전이 아니게 된다. 2011년 이전까진 그랬다. 그런데 이후엔 법이 바꼈다. 도로가 아닌 곳에서의 음주 사고가 늘어나자 2010년 법을 개정해(적용은 2011년부터) 도로가 아닌 곳에서의 음주운전도 형사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예외 적용이다. 형사처벌은 가능하나 행정처분, 즉 면허정지나 취소에선 여전히 예외다.

다시 정리하면 운전은 "도로에서 차마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인데, 2011년부터는 음주운전(+약물운전, 뺑소니 등)을 했을 때는 '도로가 아닌 곳'에서였더라도 예외적으로 운전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즉, 아파트 단지 내에서든 어디든,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음주운전'으로 처벌받는다. 다만 벌금이나 징역은 살아도 면허정지나 취소는 안 당한다.

3. 시동을 건 채로 앉아만 있어도 음주운전이 될 수 있을까.

운전의 정의에 따라, 차를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려면 시동을 걸어야 한다. 시동을 걸지 않고 차를 움직였다면(주차된 차를 밀어 움직였다든지, 들어 옮겼다든지), 시동이 걸려 있더라도, 실수로 기어가 들어가면서 이동했다면(잠꼬대를 하다 발로 밀었다든가) 운전으로 보지 않는다.

여기 한 판례가 있다. 전주에 사는 32살 유모씨는 2013년 5월 어느날 오전 6시쯤 자신의 차에서 자고 있다가 경찰이 깨워 일어났다. 유씨의 차는 언덕길을 내려가 다른 차량을 들이받은 상태였다. 전날 술을 마시고 대리기사를 불러 집까지 왔던 유씨는, 대리기사가 떠난 뒤 차에서 그대로 잠든 것 같다고 말했다. 유씨의 차는 시동이 걸린 상태였고 기어와 브레이크는 주차 상태는 아니었다고 한다. 유씨는 음주운전을 한 것일까? 아닐까?

1심에선 음주운전이 인정돼 유씨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2년 전 음주운전으로 이미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상태였고, 1년 전에는 같은 혐의로 벌금 2백만 원, 유씨는 4차례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전력이 있어 무거운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뒤집혔다. 재판에서 유씨는 술에 취해 운전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고 당시 대리기사는 시동이 걸린 상태에서 내렸는데 기어는 어떤 상태였는지 정확히 기억안난다고 진술했다. 차 브레이크와 기어가 어떤 이유에선지 주차 상태에서 풀려 경사를 내려가 사고를 낸 것인데 재판부는 "유씨가 차를 운전했다고 단정할 수 없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유씨가 설사 운전해 사고를 냈더라도 입증할 수 없고 잠결에 기어와 브레이크를 움직여 사고를 냈다면 '운전'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시동이 걸린 차 운전석에 술 취해 앉아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사고가 났다 하더라도, 음주운전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사례다.

하지만 역시 만취 상태에서 시동이 걸린 차 운전석에 앉아있었는데, 심지어는 차가 움직이지 않았는데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례도 있다. 위 사례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운전자가 기어를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주행(D)로 옮겨놓았다는 것이었다. 비록 차는 움직이지 않았더라도 주행 기어 상태였다는 건 즉시 차를 출발시킬 수 있기에 운전할 의사가 있었다고 봐 이 운전자는 음주운전으로 입건됐다.  

  4. 30cm만 걸쳐 있어도 음주운전?

음주운전이다. 2007년 대법원 판례인데 이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134% 상태에서 건물 주차장에서 차를 운전해 나왔다. 그러다 주차장 입구와 연결된 횡단보도에 승용차 앞부분이 30cm 정도 걸쳐 있는 상태에서 차를 멈췄다. 그 상황에서 경찰 단속을 당했다. 이 건물 주차장은 '도로가 아닌 곳', 당시 법이 바뀌기 전이라 음주운전에 해당하진 않지만 주차장을 벗어난 30cm가 문제였다. 입구쪽 횡단보도는 도로였다. 이 운전자는 차를 30cm 더 움직인 탓에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았다.

1미터, 2미터, 6미터, 10미터 등 다른 차를 빼기 위해 옮겨달라고 해서 조금만 이동했더라도 음주운전이라는 판례는 무수히 많다. 조금만 움직였어도 운전이다. 음주 상태였다면 음주운전이다.

  5. 2미터 음주운전했는데 무죄?

여기까지 보면 법도 바뀌었기 때문에 도로든 도로가 아닌 곳이든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인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거나 운전할 의사를 보이면(차 시동과 기어 조작을 통해)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사례는 좀 헷갈리게 한다. 2013년 6월 대구지법 항소심 판결이다. 혈중알코올농도 0.160%에서 자기 차를 2미터 운전한 피고에게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

이 운전자는 사건 당일 어느 모텔 앞에 주차하고 근처 식당에서 술을 마셨는데 모텔 측에서 차를 빼달라고 여러 차례 전화했다. 1시간이 지나 차를 빼러 모텔 앞으로 온 운전자는 전화로 대리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업체로 연결이 잘 안됐고 그런 상황에서 화가 난 모텔 주인은 이 운전자를  마구 폭행했다. 그러자 이 운전자는 잠시 근처 다른 모텔로 피신했다가 다시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나왔다. 그때 모텔 주인 아들이 빨리 차를 빼라고 하자 음주상태로 운전해 차를 2미터 정도 이동했던 것이다. 음주운전이었다. 

1심 재판부는 음주운전에 해당한다며 벌금형을 내렸는데 항소심에서는 뒤집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음주운전 행위가 당시 상황에 비춰볼 때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상당성이 있어 위법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빨리 차를 이동시키지 않으면 또 폭행을 당할 수 있는 위급 상황이었기에 음주운전은 했으나 위법은 아니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 같다.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인 만큼 이렇게 정리하면 될 듯하다.

"도로든 도로가 아닌 곳이든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인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하거나 운전할 의사를 보이면(차 시동과 기어 조작을 통해)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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