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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해파리에 식초로 치료? 실상은 이렇습니다

[취재파일] 해파리에 식초로 치료? 실상은 이렇습니다
말 그대로 찌는 듯한 무더위가 끝나고 이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휴가들은 잘 다녀오셨는지요? 그런데 지난 여름 우리나라 해역에선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수욕을 즐기던 한 8살 어린이가 해파리에 쏘여 숨진 사건이 그것인데요, 이 어린이 뿐 아니라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해안으로 몰려온 해파리떼에 쏘이는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지난 21일 밤 9시 방영된 '기자가 만나는 세상 현장 21'을 통해 '해파리의 습격'이라는 제목의 기획물을 방송했습니다. 우리나라 해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해파리 쏘임 피해와 대량 발생한 해파리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어민들, 그리고 해파리 증가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살펴보는 기획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해파리에 쏘였을 때 식초를 바르면 독액 방출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한 연구진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저희 방송이 나가고 한 시간 뒤 한 방송사 드라마에서 해파리에 쏘인 사람들을 식초로 치료하는 장면이 나가면서 많은 분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에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우리나라에서는 해파리에 쏘였을 때 식초를 쓰는 것은 상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으니 쓰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희 방송에서 영상과 함께 설명을 했습니다만 우리나라 연안에 가장 많이 출몰하는 해파리종 가운데 독성이 강한 해파리를 직접 잡아 실험을 한 결과 식초는 독액의 방출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실험을 진행한 사람은 경상대 수의대 김의경 교수입니다. 약리독성을 전공한 김 교수는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 해파리 피해가 늘어나자 해파리 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수년째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해파리 독성에 관한 한 국내에선 가장 권위있는 전문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부터 올 여름에 걸쳐 국내 해안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노무라입깃해파리(8살 어린아이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 해파리입니다)와 제주에 많이 출몰하는 작은부레관해파리, 그리고 커튼원양해파리를 중심으로 각종 물질에 해파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해파리 촉수에 바닷물과 알코올 소독제, 수돗물, 식초를 닿게 해 나타나는 반응을 살펴본 것이지요.

그 결과 바닷물이 닿았을 때 해파리에게 있는 독이 든 자포의 독액 방출이 가장 적었습니다. 수돗물이 독액방출을 다소 유발했고 알코올 소독제는 조금 더 유발했습니다. 그리고 식초가 닿았을 때 독액의 방출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근해에 가장 많이 출몰하는 독성 해파리의 경우 식초를 쓰면 독액 방출을 증가시켜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김 교수는 지난 6월 이런 내용을 대한응급의학독성학회에 참석해 발표하고 토론도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수산과학원, 해양경찰청도 김 교수가 자문한 내용을 담아 전국에 해파리 대처법 포스터를 배포했습니다. 여기엔 '쏘임사고에 민간요법으로 많이 사용하는 식초는 해파리 독액의 방출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돼 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선 해파리에 쏘였을 때 식초를 쓰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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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식초는 갑자기 왜 등장하는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포스터 속 해파리대처법 문구에도 괄호 안에 '단, 맹독성 입방해파리에 쏘인 경우에는 식초를 사용한다'고 돼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혼란이 벌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제 기사에도 나옵니다만 해파리 가운데 가장 독성이 강한 해파리로 상자입방해파리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백 명도 넘는 사람을 숨지게 한 해파리인데요, 이 해파리는 주로 호주에 사는 종입니다.

호주에서는 거의 매년 해수욕객이 이 입방해파리에 의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해파리에 대한 연구는 호주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잘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입방해파리에 쏘였을 때 식초를 바르면 독액 방출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가장 독성이 강한 해파리에 식초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셈이죠. 결국 이런 내용이 전해지면서 해파리에 쏘였을 때 식초를 바르면 독액을 감소시킨다는 얘기가 나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입방해파리에 관련된 얘기입니다. 입방해파리가 최근 우리 남해안에서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해수욕객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힌 경우는 우리나라에선 없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훨씬 더 쉽게 볼 수 있고 우리가 쏘일 가능성이 더 큰 해파리에게는 식초가 부작용이 일어나는 방법인 셈이죠.

더구나 해파리와 관련해 응급의학에서 말하는 것은 생리식염수에 5%의 아세틱애시드를 넣어 사용했을 때 해파리독에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식초가 아세틱애시드로 돼 있으니 사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식초는 그 농도에 차이가 있고 생리식염수처럼 무균처리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응급의학에서 얘기하는 물질과도 식초가 딱 맞아 떨어진다고 얘기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치 우리가 포도당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농도가 비슷한 설탕물을 주입해도 되느냐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의료계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김의경 교수는 실제로 입방해파리에 식초가 효과가 있는지 앞으로 따져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한 연구도 조만간 진행이 돼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아직 우리나라에는 해파리 독성 치료제가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단 하나 해파리 치료제가 개발돼 있는데 바로 입방해파리 치료제는 해외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해독제를 왜 다른 해파리에 사용하지 못할까요? 바로 해파리는 그 독성이 종류 마다 서로 달라 한 가지 치료제를 모든 해파리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치료제도 이런 상황인데 식초가 마치 대부분의 해파리에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매우 무리가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해파리에 쏘였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파리에 쏘였다는 느낌이 들면 우선 해수욕장 주변에 설치된 해상구조대를 바로 찾아가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바닷물을 쏘인 부위에 계속 흘려주시면 됩니다. 물리적인 자극을 주시면 독액 방출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문지르지 마시고 바닷물을 계속 흘려주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고도 통증이 가시지 않거나 호흡이 가빠지고 의식이 혼미해질 경우는 즉시 병원에 가서 신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내용에 문제가 있다거나 아니면 의료진이 잘못된 자문을 했다고 비난하고 싶진 않습니다. 국내 해파리 연구가 이뤄진 것이 비교적 최근이고 드라마를 제작할 당시에는 이런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 식초가 일부 해파리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있으니 이를 토대로 드라마를 제작한 것도 어찌보면 시청자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국내 연구진에 의해 그와 반대되는 실증적인 연구가 나온 다음에도 방송 내용이 의료진의 자문을 구한 내용이니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거나 일부에서 여전히 식초가 대부분의 해파리에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만약 우리 국민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해파리에 쏘여 식초를 발랐다가 부작용이 일어날 경우 그로 인한 피해는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우리나라 해역에선 해파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아열대성 독성 해파리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해파리에 대한 연구가 학계나 의료계에서 더욱 활성화되고 이에 대한 대책과 해법이 마련됐으면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마음 놓고 여름에 즐거운 해수욕을 하고 어민들도 만선의 기쁨을 누리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제가 이번 기획물을 만든 목적이자 이유이기도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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