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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 했던' 맨유 주장 박지성을 보다

'상상도 못 했던' 맨유 주장 박지성을 보다
'자랑스런 캡틴 박, 맨유에서도'

24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2011/2012 유로파리그' 32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약스의 경기를 기다리던 한국팬들의 눈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하며 자신들에게 '캡틴 박'으로 불린 박지성이 그의 소속팀 맨유에서 노란색 주장완장을 차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선수가, 축구종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팀의 주장완장을 차고 90분 풀타임을 뛴 사례는 전무후무한 일에 가깝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명문구단 중 하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011/2012 시즌, 맨유에서 8년 차를 보내고 있는 박지성의 가치는 그가 "국가대표팀에서 나의 역할은 이제 후배들에게 넘겨주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소속팀에 더욱 전념하겠다"며 대표팀을 은퇴한 지 반년이 흐른 지금 더욱 명확해 지고 있다.

퍼거슨 감독은 네덜란드의 명문 아약스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유로파리그 32강 경기를 앞두고 "어린 선수들을 선발명단 전면에 배치시키겠다"는 구상을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이 날 경기에 이름을 올린 선수 대부분이 20살을 갓 넘긴 신예들이었으며 박지성은 선발선수 11명 중 맨유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는 최고참급 선수였다. 단지 맨유에서의 경험만이 아니다. 2005년 맨유로 이적하기 전까지 박지성은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에서 활약했으며 아약스는 물론 네덜란드 축구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경험한 선수이기도 하다.

'맨유제국'을 이끌고 있는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주장완장을 준 것은 바로 그의 '대체 불가한' 경험치 덕분일 가능성이 크다. '레전드'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라이언 긱스와 같은 선수는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을 것이다"며 그 누구보다 베테랑 선수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가 퍼거슨 감독이다.



1, 2차전 합계전적에 의해 유로파리그 16강 진출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사실 맨유는 이 날 아약스와의 32강 2차전 경기서 1-2로 역전패 당하며 경기 내용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역사는 성공의 나이테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박지성이라는 선수의 존재자체가 그것을 증명한다. 누구보다 많은 시련, 누구보다 많은 위기와 싸워 온 박지성은 실패를 통해, 위기 속에서 더욱 강해져 왔고 또 한 발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입단 초기 '아시아 마케팅을 위해 영입된 선수'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고, 경기에 나오는 날 보다 나오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아 자국의 팬들에게조차 '벤치성'이라는 웃지 못할 변명으로 회자되던 선수. 그런 선수가 유럽 최고의 명문구단에서 그 누구보다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팀 내 베테랑으로 성장했으며, 감독이 "위험을 안고 어린 선수들을 위주로 출전시키겠다"고 공언한 경기에서 주장직을 밑고 맡길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축구종가 영국에서 '주장'의 의미는 특히 남다르다. 국가대표팀이기에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의 주장직을 맡고 있던 존 테리는 팀 내 동료의 여자친구와 불륜을 일으켜 한 번, 인종차별 발언을 했다는 구설수에 휘말려 한 번, 무려 두 번이나 국가대표팀 주장직을 박탈당했다. 축구종가에서 '주장'보다 더 중요시 되는 것이 '주장의 자질'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리버풀의 주장인 스티븐 제라드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안필드의 정신적 지주'라는 평가를 받는다. 축구종가에서 '캡틴'의 자리는 아무나 맡을 수도 없고, 아무나 맡아서도 안 되는 자리다.

실제로 아약스전을 앞두고 맨유의 주장은 갑작스럽게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직전 유로파 대회를 주관하는 유럽축구연맹(UEFA)의 공식명단에까지 이미 20살의 어린 수비수 필 존스가 '캡틴'으로 표기된 상황이었다. 영국 언론들은 차기 자국 국가대표팀 수비라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필 존스가 맨유와 같은 빅 클럽에서 비록 한 경기일지라도, 주장으로 선임된 것에 크게 주목했다. 자국선수가 빅 매치에서 중요한 경험을 쌓게 될 기회를 얻는 것을 비난할 언론은 없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경기 킥오프를 앞두고, 필 존스가 아닌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택했다. '맨유'는 잉글랜드 팀이기도 하지만 퍼거슨의 팀이기도 하다. 감독은 8년 넘게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어느덧 자신이 가장 믿고 중책을 맡길 수 있는 아시아 출신의 선수에게 손수 주장완장을 넘겨줬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센세이션'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물론 맨유가 1-2 패배가 아니라 2-1 승리를 거뒀다면 맨유의 '캡틴 박'은 더욱 많은 조명과 찬사를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박지성이 그렇게 당장의 성공에 집착하는 선수였다면 그는 오늘, 한국의 팬들조차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두 번 다시 맨유의 주장완장을 차지 못하더라도, 그는 이미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박지성이 써야 할 역사들,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레전드'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SBS 통합온라인뉴스센터 이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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