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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자가 전하는 '5분간의 동행'

대부분 사형수 "덕택에 잘 있다 갑니다", '사이코패스'는 끝까지 인사·반성 안해

1997년 12월 30일 오전 8시 30분 서울구치소 기동타격대 선임 김모 교도관은 평소와 다름 없이 출근했다.

곧바로 보안과장의 호출이 있었고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만 감돌았다.

그것도 잠시, 그의 손에는 그날 사형이 집행될 사형수 네 명의 명단이 건네졌다.

2년 전 지존파와 온보현 등 열다섯 명의 사형 집행일에 맡았던 역할을 또다시 떠맡게 된 그로서는 '왜 하필 내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뼛속까지 밀려드는 긴장감에 다른 상념은 얼른 지워냈다.

그는 먼저 2년 동안 사용한 적이 없는 사형장에 들러 다른 교도관들이 분주히 청소하고 시설을 점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오전 11시가 되자 기동타격대 후배 다섯 명과 함께 첫 번째 사형수를 데리러 발걸음을 뗐다.

매일 얼굴을 봤던 사형수였다. 직업적으로 거리를 뒀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쳤다.

김 교도관이 이름을 부르자 미결수들과 섞여 있던 사형수는 순간 멈칫거리더니 말없이 따라나섰다.

"사형집행은 보안사항이라 미리 말해주는 사람이 없음에도, 명단에 적힌 사형수는 그날 자신이 세상을 뜰 것을 직감하고 있었어요. 당시에는 언제든 사형이 집행될 수 있었기에 사형수들은 매일 아침 죽음을 준비했거든요."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임을 알아차린 사형수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김 교도관은 "사형수의 이름을 부르면 평소 아무리 날뛰던 사람도 기가 꺾이고 초연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라고 표현했다.

김 교도관은 사형수가 방에서 나오자 수갑을 채우고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사형이 집행된다"고 알리고 나서 사형장까지 동행했다.

길어야 5분 남짓. 사형수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느린 걸음을 걸으며 세상과 영원히 작별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그는 "대부분 사형수는 사형장까지 걸어가면서 '덕택에 잘 있다 갑니다'라고 인사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예수님의 품으로 갑니다' 등의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경험상 사이코패스 유형의 사형수는 마지막 순간에도 교도관에게 인사를 하거나 반성의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김 교도관은 사형장에 도착해 집행절차를 지켜봤다.

먼저 사형수의 이름과 범죄내용, 사형선고 사실 등을 묻고, 원하는 대로 종교의식을 치르고 나서 유언을 들은 뒤 집행개시를 알리는 빨간 불이 들어오면 커튼이 닫힌다.

사형수가 보이지 않게 벽 뒤에 앉은 다섯 명의 사람이 동시에 자기 앞의 버튼을 누르면 누구의 선택에 따라 작동하는지 알 수 없도록 2~3초가 흐르고 사형수 발밑의 장치가 열려 교수형이 집행된다.

다시 커튼이 열리면 의사가 사망을 확인하고, 집행완료 보고가 이뤄진다.

이어 김 교도관과 기동타격대원들은 두 번째 사형수를 데리러 이동했다. 이렇게 하루 동안 네 명의 사형집행을 위해 같은 일이 반복됐다.

사형수의 시신은 교도소 내 종교모임 회원들이 거둬 24시간이 지나고서 가족에게 인계했고, 무연고자는 자체적으로 장례를 치렀다.

김 교도관은 "그날은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과거에는 2~3년에 한 번씩 집행이 있어서 100명의 사형집행에 참여한 교도관도 있었지만 이제는 12년째 사형집행이 없어서 경험자가 몇 명 남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도관은 "어차피 교도관은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이다. 사형집행 명령을 거부한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며 "명령을 받으면 하는 것이지 다른 생각을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고 말하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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