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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AI는 발명가가 될 수 있을까…외국 사례는

[취재파일] AI는 발명가가 될 수 있을까…외국 사례는
5월 19일은 '발명의 날'입니다.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한 날을 기려 제정됐습니다. 측우기가 발명된 지 580여 년이 흐른 지금, '발명이 인간의 전유물인가'라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창의성에 도전장을 던지고 나선 것입니다.
 

AI 발명가, 자기 이름 대신 AI 이름으로 특허 출원

미국의 AI 개발자 테일러 스티븐 엘은 지난 2020년 3월 우리나라 특허청에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세상에 없던 두 가지를 발명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내외부를 오목하고 볼록하게 만든 식품 용기입니다. 용기의 결합이 쉽고 열전달 효율도 높다는 게 테일러 측의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경 자극 램프입니다. 표류 시 사람의 눈에 잘 띄게, 신경 동작 패턴을 모방해서 깜빡임 빛을 낸다고 설명했습니다.

AI '다부스'가 발명했다고 출원된 발명품 도면

하지만 테일러가 낸 특허 출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특허 출원 서류의 '발명자'란에 자신의 이름이 아닌, 자신이 개발한 AI의 이름 '다부스(DABUS)'를 적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특허법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자'(제33조)로 '발명을 한 사람 또는 그 승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만 특허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허청은 특허 출원 내용을 심사하기도 전에, 법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특허 출원을 무효로 했습니다. 테일러가 특허 출원 무효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면서 'AI 발명' 논란은 법정 다툼으로 옮겨갔습니다.
 

"AI가 독자적으로 창작" vs "입법 통해 보완해야"

테일러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자신은 이번 발명품과 관련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걸 AI가 일반적 발명 지식을 학습해 독자적으로 창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발명한 게 아닌데 어떻게 내 이름으로 특허를 낼 수 있느냐고 테일러는 항변했습니다. 두 번째 주장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내용입니다. 특허법이 만들어질 당시엔 사람만이 발명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AI도 발명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때문에, 과거의 법 테두리에만 갇혀서는 안 되고, '발명자'의 개념을 시대 변화에 맞게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술·산업 발전의 도모'라는 특허법의 취지에 비춰서도 AI를 발명자로 기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다부스를 개발한 테일러(왼쪽)와 다부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교수가 미국 의회에서 특허법 개정을 요구하는 모습

국내 법원은 두 차례에 걸쳐 이런 테일러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1심 판결은 지난해 6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내려졌습니다. 주요하게는 현행 특허 법령상 '발명자'는 문언 그대로 자연인(사람)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 '다부스'의 학습 과정에 인간이 상당한 수준으로 개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했습니다. 즉, 100% 다부스가 스스로 발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나아가, AI를 발명자로 인정하는 것이 반드시 기술·산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경우 인간 지성의 위축을 초래하거나 연구 집약적 산업이 붕괴될 우려가 있고, 발명으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인간이 책임을 회피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우려도 엄존한다고 봤습니다. 빅테크 같은 소수 거대 기업이 AI를 독점해 특허법이 소수의 권익만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성도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2심 판결은 올해 발명의 날을 사흘 앞둔 5월 16일 선고됐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전부 인용하면서, "현재의 특허법 규정만으로 AI를 발명자에 포함시키는 것은 정당한 법률 해석의 한계를 벗어난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그러면서 "향후 AI의 발명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존재한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법체계에선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필요하면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주요국, AI 발명자 인정 안 해…호주·독일, 특이 판결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선 어떨까요. 테일러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18개국에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AI의 특허권을 각국이 인정하는지 확인하는 위한 것으로, '다부스 프로젝트'라 불리기도 합니다. 18개국 가운데 특허를 인정한 나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유일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특허 관청이 별도 심사를 하지 않는 '무심사 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등 8개국에서는 자격 요건 위반으로 특허를 받아주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졌으며, 나머지 9개국에선 심사가 진행 중이거나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소송이 진행된 국가 중에선 미국, 유럽연합, 영국에서 최종 기각됐습니다. 호주에선 1심 법원이 AI도 발명자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상고심 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독일은 연방특허법원이 "AI를 발명자로 인정할 순 없어도 발명자 정보에 병기할 수 있다"고 판시했고,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AI 발명에 대한 인식, 일반인·전문가 차이 커

AI의 발명에 대한 인식은 '일반인'과 '전문가' 사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우리 특허청은 지난해 7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인이 1,204명, 변리사, 연구원 같은 전문가가 292명 참여했습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의 70%는 AI를 '발명 파트너'로 봤지만, 전문가는 32%만 '발명 파트너'로 판단했습니다. 오히려 전문가의 66%는 'AI는 발명 도구에 불과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만큼 전문가 집단에선 AI를 발명자나 특허권자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습니다.

일반인과 전문가 간의 AI 기술수준 인식 차이에 대한 특허청의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

특허권 인정 여부를 떠나 AI의 영역이 급팽창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엔비디아와 구글은 이미 AI를 이용해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습니다. 수십만 개 이상의 반도체 소자를 주어진 공간 안에 배치하는 복잡한 작업인데, 반도체 설계 전문가도 몇 주에서 몇 개월이 소요되는 작업을 AI는 몇 시간 만에 소화해 내고 있습니다.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몇 개월에서 몇 년이 걸리는 단백질 구조 분석을 AI가 몇 분 만에 해결했다거나, 코로나19 백신의 mRNA 구조를 AI가 재설계해 백신의 효능을 100배 이상 높였다는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앞으로 AI의 발명을 둘러싼 논란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대목입니다. AI의 권리와 책임에 대한 논란도 필연적으로 수반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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